시천주께서도 ‘주역은 내가 개벽할 때에 쓴다’고 하셨으며, ‘도통하기 위해서는 8괘를 알아야 한다’고 하셨을 정도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팔괘입니다. 그럼, 팔괘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서종과의 문맥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여러분들도 너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지만, 다시 한 번 풀이를 한다면 ‘이로운 것도 셋이요, 해로운 것도 셋이며, 상서로움이 동방에 있고, 신으로써 말하고, 듣고, 계산하며, 활용한다’는 정도가 되겠군요. 그런데 서종과의 모습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서 있는 사람’ 같지 않습니까? 익자삼우와 손자삼우 두 줄은 머리통이요, 기서재동은 몸통이고, 언청신계용은 사지와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損 益 者 者 三 三 友 友 其 瑞 在 東 計 神 言 用 聽 |
정도가 보기에도 그것은 영락(零落) 없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런데 왜 사람의 형상으로 한 걸까?
“현무경을 성편한 날이 ‘기유년(1909년) 정월 일일 사시‘라고 하였는데, 그날로부터 사람은 더 이상 눕지 않고, 서게 된다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낸 겁니다. 사람이 누워 있다는 건, 아직 사람이 스스로 자립할 수 없다는 걸 가리킵니다. 누워 있으려면 머리를 땅으로 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까 현무경이 나오기 전에 인류는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몇 사람이 머리를 끄덕였다.
“땅은 구체적으로 무얼 가리킬까요?”
“물질입니다.”
누군가 힘차게 대답을 했다.
“물론,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죠.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깨달음 보다는 우선 눈에 보이는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이겠죠. 물질이나 땅을 도수(度數)로 바꾸어서 말한다면?”
운곡선생은 장내를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하산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누웠느냐, 서 있느냐 하는 걸 기준으로 본다면, 인지사정(人之四正)인 인신사해(寅申巳亥)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머리는 巳이고, 배는 亥라고 보아야 하는데, 선천 낙서에서는 巳가 가장 밝은 진사지간(辰巳之間)에 있었다는 걸 가리키는 게 아닐까요?”
운곡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은 맞았는데, 왜 巳가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고, 亥가 배를 가리킨다고 하나요?”
그 말에는 하산도 잠시 머뭇거렸다.
“그건 깊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선천의 시간은 자시(子時)로부터 시작을 하였죠?”
“네”
“선천에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물질이 주인공이었죠?”
“네”
“선천의 주인공은 선천의 시공을 여는 개벽주를 가리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죠.”
하산과 운곡선생은 마치 둘이서만 문답을 주고받는 것처럼 대화를 계속하였다.
“선천의 시공은 누가 열었나요?”
“임자(壬子)가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