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예수는 왜 어머니를 그렇게 부른 것일까?
예수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야 한다.
선천은 남자의 갈빗대에서 태어난 남자의 후손들이 지배한 세상이다.
그러므로 후천이 오려면 당연히 여자다운 여자가 세상에 등장해야 한다.
그 대상으로 선택된 인물이 마리아였다.
하지만 마리아는 아직 어린 편에 속했다.
진정한 어머니는 자녀를 온전하게 키워냈을 적에 가능한 법이다.
그냥 자녀만 낳았다고 하여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면 이 세상의 어느 여성이건 자녀만 낳으면 다 온전한 어머니라고 해야 한다.
하늘이 바라는 어머니는 자녀를 아버지께로 온전하게 이끈 어머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니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깨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 요한복음 20장 11절 ~ 17절”
이 글을 보면 예수가 아버지께로 올라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예수를 만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여전히 ‘여자여’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이는 곧 예수가 아버지께로 올라가기 전에는 누구도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를 만질 수 있다 함은 예수를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 전에는 그 누구도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인생을 살펴봐도 당연한 현상이다.
비록 자녀를 낳았다고 하여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어머니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성경에서 유독 여자의 후손을 강조한 것은 물로 후천은 坤道(곤도)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이 그릇 된 원인은 바로 여자가 선악과에 먼저 유혹 당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리적으로 물질적인 유혹에 약하다. 남자는 양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의리나 뜻을 비중 있게 여기는 반면, 여성은 음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해타산이나 관능적인 경향에 비중을 둔다.
여성이 선악에 먼저 유혹된 것도 이와 같은 속성 때문이었다.
선악과를 먹는다 함은 자신에게 유리한자. 불리한지를 따진다는 것과 같다.
선천세상에서 남성들이 여성보다 우월적인 지배를 하게 된 것도 실은 여성들의 책임이 더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일단 시집을 가서 자녀를 낳아야 하는데, 딸보다 아들을 더 원했다.
물론 사회적인 배경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측면이 강하지만,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그렇게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 뿐이랴!
자신이 낳은 아들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고, 극성을 부리는 어머니들이 바로 우리한국의 어머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