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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시험

영부, 精山 2009. 1. 8. 08:17

예수가 시험을 받은 곳은 광야다.

구체적으로 그 곳의 지명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광야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귀는 왜 예수를 광야로 시험 장소를 선택하였을까? 광야는 짐승이 사는 곳이다.

짐승은 실제 짐승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이 아닌 짐승 인간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사람들이 모르는 영적인 신비한 장소에서 예수와 마귀가 마지막 일전을 치룬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을 광야라고 했던 것처럼 마귀와 일전을 치룬 곳도 광야다.

생각해 보라! 세례요한이 세례를 어찌 광야에서 베푼단 말인가?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3장 1절 ~ 3절”

 

세례는 당연히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베풀어야 하는데, 광야에서 베풀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는데, 그걸 그대로 이룬 사람이 세례 요한이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말한 ‘광야’의 개념은 영적인 광야다.

세례요한은 애초부터 광야에서 거주하면서 예수의 예비자로 태어났다.

세례요한이 살았던 당시의 환경을 가리켜 광야라고 한 것이지, 실제로 광야에서 거주한 건 아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을 적에 수풀에 양의 뿔이 걸린 것을 보았다는 말과 같다.

수풀이나 광야는 다 같이 짐승이 사는 곳이다. 이삭을 번제로 바쳐야 했던 것도, 그가 아직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세례요한과 예수가 광야에서 전도하고 시험을 받아야 했던 것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 짐승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마귀에게 시험을 마지막 시험을 마치기 위해서 40일을 금식하였다고 한 것은, 40일이 지니는 상징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언급하였다.

마귀가 예수를 시험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덩이도 떡으로 변하게 하라는 것인데, 이때의 돌은 광물(鑛物)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즉 돌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먹고 살 걱정을 하지 말게 하라는 것이었다.

돌 같은 마음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데, 긍정적인 것은 돌보다 더 더 단단한 구도심을 의미하며, 부정적인 것은 강퍅하여 진리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모진 마음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마음이건, 부정적인 마음이건, 진리의 말씀으로 살면 먹고 사는 것도 다 해결된다.

두 번째의 시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으니 자신이 있으면 뛰어내리라고 하였다.

이때의 성전은 예수의 몸을 가리킨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 성을 헐어라. 3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고 하였다.

그것은 물질적인 성전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예수의 몸을 가리켰다.

따라서 두 번째의 시험은 십자가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였다.

세 번째 시험은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예수의 대답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였다.

 

세 가지의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의식주, 명예, 권력, 부귀영화가 더 좋은 것이라는 유혹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모든 것의 근원은 진리의 말씀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바람이요, 뜬 구름 같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예수는 일러주는 셈이다.

마귀가 따로 있어서 예수를 시험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류가 겪는 모든 유혹과 시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사실 모든 인류는 이 세 가지 시험과 부단히 싸우고 있다.

그것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진리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