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예수는 세례 요한이 잡힌 후부터 갈릴리에서 처음으로 전도를 시작한다. 그가 갈리리에서 처음으로 만난 제자를 삼은 인물이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였다.
그들은 어부라고 하였는데 어부는 물고기를 잡는 걸 생업으로 한다.
물은 바다요, 바다는 이 세상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물고기로 비유한다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무언가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을 했던 인물들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예수는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아갔다고 한 것은, 예전에 세상 사람들을 낚던 율법을 버렸다는 얘기다.
다른 어부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깁던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는다.
뿐만 아니라 부친을 버리기까지 하였다.
물론 여기서의 부친은 육신적인 부모가 아니라 영적인 부모를 가리킨다.
예수의 설교는 힘이 있었다.
각종 병든 자와 약한 자가 그의 설교를 듣고 병이 나았다.
그런 소문이 퍼지자 각종 환자, 귀신 들린 자, 간질환자, 중풍병자 등이 그를 좇았으므로 허다한 무리를 이루었다.
여기서의 각종 병자는 육신의 병자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면서 마치 성령을 통해서 육신의 질병이 사라지고, 귀신이 사라지는 것처럼 선전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治病(치병)은 육신의 질병을 고쳤다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는 이미 예수의 처녀 탄생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면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예수)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間(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 이사야 42장 5절 ~ 7절”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이사야 35장 5절 ~ 6절”
이런 구절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이사야 때나 예수 때나 하나님은 항상 영적인 이목구비가 막히고 중풍이 들며, 곱사등이가 된 것을 고쳐주겠다고 한 것이지, 육신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한 건 아니다.
물론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일도 커다란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에 의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는 인생을 가르친다.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마치 여호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성령의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교나 무속인들이 신기하게 병을 고치는 것을 두고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탄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오직 예수나 여호와를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만이 진실인 양 糊塗(호도)하고 있다.
이른 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무얼 믿건 병을 낫게 하는 건, 자연의 법칙인 진리의 위력이다.
어느 신이 있어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신을 진리라고 본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지만, 특정한 신에게서 나오는 능력만 진짜인 것처럼 믿는다면 어찌 공정하다고 할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