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사실 그것도 가만히 생각을 하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벗들과는 믿음으로 지내라는 등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위시한 선천의 계율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인해 오히려 세상이 마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처럼 획일적이며 생동감이 없는 박제(剝製) 인격자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천지의 자녀이므로 당연히 천지부모를 닮아야 합니다.
천지부모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원방이라고 하였고, 원방의 관계를 잘 생각하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도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일러 ’방에서 이루어진 두 개의 십‘이라고 한 겁니다.
앞에서 우리는 원은 방에서 나왔으며, 방에는 內方과 外方으로 크게 나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방과 외방에는 十이 있으니 이 두 개의 十을 보여(示) 주는 것을 가리켜 禮라고 합니다.
여러분, 방에도 지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몇 사람이 동시에 큰 소리로 답을 하였다.
“하하하. 지름이 없는 도형은 있을 수가 없지요.
그렇게 쉬운 질문을 하는 건 여러분께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일부러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시 한 번 질문합니다.
방(정사각형)에 있는 지름은 정확하게 몇 개일까요?”
지름이 몇 개라니?
지름은 본래 한 개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원지름이라고 하면 원의 중심점에서 일정한 길이에 해당하는 모든 수치가 다 지름이 아닌가?
비록 원을 형성하는 대칭축은 무수하지만, 그것은 모두 동일한 수치이기에 지름은 하나라고 하는 게 아닌가?
설마 운곡선생은 그 많은 선을 전부 지름이라고 하는 건 아닐 텐데.
정도는 운곡선생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지름은 하나지, 몇 개가 나올 수 있느냐는 인식 때문인 듯하군요.
지름이 하나라는 건, 원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방을 기준으로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자아 방을 그려볼까요?”
운곡선생은 정사각형을 두 개 칠판에 그렸다.
4방의 선의 중심과 사각형의 중심을 잇자, 한 개의 십자가가 그려졌다.
다른 하나의 도형은 네 개의 모서리와 중심을 이은 것인데 그것도 하나의 십자를 형성하였다.
그러니까 하나는 덧셈 표시처럼 十의 형상을 띠고, 다른 하나는 곱셈 표시처럼 × 형상을 띠고 있었다. 즉 정도가 노트에 메모해 두었던 정사각형과 마름모의 형태가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원에는 무수한 지름이 있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그건 모두 같은 것이므로 종류는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방에는 지름이 몇 개나 될까요?”
“방에는 지름이 두 개가 있습니다.”
일행은 힘차게 대답을 하였다.
정도도 자신의 노트에 ‘방에는 두 개의 지름이 있다’고 한 메모가 있었으므로 확신에 차서 대답을 하였다.
“방에 있는 지름이 두 개밖에 안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