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중앙 토는 만물의 바탕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피부의 촉각을 가리킨다고 본 건 탁월한 견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5경이나 7현무가 사실은 동일한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인체의 5관과 7규도 역시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오관을 통해서 들어간 모든 유, 무형의 정보들은 이목구비라는 4상을 통해 접수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7규와 조화하여야 하는데, 물질적인 토의 덕성을 받아 빛을 발하던 7규는 선천의 동물적인 의식의 차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사람의 형상만 지녔을 뿐, 실제로는 짐승보다 더 악랄한 존재로 화했던 것입니다.
짐승들은 본능적인 약육강식으로 생활하다 보니 비록 수준이나 차원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처럼 교활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4상의 중심에 참다운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물질적인 개념이나 의식으로 무장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허상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만의 잘못이 아니라 천지의 운기가 양을 위주로 흐른 결과였다는 건 이미 밝힌 그대로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개벽주가 오셔서 현무경과 용담도로 개벽의 이치를 일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중심에 5, 10토가 아닌 11귀체의 의식을 지니게 됐습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자오결입니다.”
정도는 ‘일자오결’을 ‘한 문구를 다섯 자씩으로 묶은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한 문단으로 묶은 게 다섯 개’라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四字五結’이라고 했으면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선생님, 차라리 ‘四字五結’이라고 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굳이 ‘일자오결’이라고 해서 어렵게 만들었나요?”
정도는 기어이 궁금증을 입 밖으로 뱉었다.
“호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건 아직도 일자오결의 참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정도군이 말한 것은 ‘넉 자를 한 묶음으로 한 다섯 묶음’을 가리키고 있지요?
하긴 그럴 만도 하지요.
‘사략 통감‘ ’대학 소학‘ 이런 식으로 묶어버리면 넉자를 한 묶음으로 하여 다섯 개가 되는 셈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당연히 ’일자오결‘이 아니라 ’사자오결‘이라고 해야 겠지요.
하지만 일자오결은 ’한 자에 다섯 개를 묶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다섯 개라고 하니까 자꾸 문자의 개수(個數)를 가리키는 걸로 생각하는 하는 모양인데 그러면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럼? 정도가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까 허오행과 실오행이라는 말을 상기(想起)해 보세요.
허오행은 천지의 사상을 가리키는데 그 합이 20이라고 하였죠?
그래서 일자오결의 글자 수가 20이었던 겁니다.
그것은 그냥 천지의 합을 가리킨 것이요, 만약 그걸 인간의 자성에서 제대로 파악한다면 그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5행이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면 20개가 아니라 몇 개가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