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기 선생님의 米壽잔치상에 올리는
가장 초라한, 처절하게 버려진 제자 몽골사학도 주채혁의 스텝현장답사 메모지 膳物
선생님의 米壽를 충심으로 慶賀드립니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그 시궁창, 학생들의 생존현장에 내려오셔 그간 몸소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시며 함께 연구하시고 교육해 오신 선생님의 일생을, 인터넷과 컴퓨터의 이용도 어려운 후진 몽골 스텝에서, 제자로서 되새겨 봅니다.
근 20년전, 희미한 어떤 불빛을 어렴프시 보시고 그 드넓은 몽골스텝을 거센 바람을 헤치며 우리와 함께 헤매시던 그 족적이 있어서, 오늘의 제가 이런 눈을 뜨고 이만큼 우리역사의 문제들을 푸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헤매는 우리의 모습을 가상히 여기시어 여기 임재하신 조상님들이 음덕을 베풀어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듯합니다. 비록 외롭고 괴롭게 絶海의 孤島를 홀로 헤매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기쁨으로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셈이지만, 타고난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염치없게도 제가 선생님께 올릴 선물은 『몽골-한국의 ‘할하-弓’族 分族論』이라는 한 편 글-메모뿐입니다. 어렵사리, 기어이 이곳에 와서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와 그의 1975년도 논저에 대해 토론하던 중에 저의 근20년 시베리아-몽골-만주 현지답사 체험이 되새겨지면서 재정리해본 글입니다. 결론은 몽골인도 한국인도 ‘활의 후예’-「弓裔」라는 한-몽겨레 弓族同源論입니다. ‘할하’몽골족이라고 하지만 이는 몽골이 궁족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할하」가 곧 ‘활’로 할하오복-할하족은 弓族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주도한 弓裔는 자기이름을 ‘활의 후예’로 지었고 그 후손들은 「弓氏」 姓을 가진 이들로 족보를 써내려왔습니다. 아주 놀라운 일은 고구려 곧 자칭 高麗-Qori 또는 Xori 자체가 바로 ‘활’-弓이라는 뜻의 종족이름 또는 나라이름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코리가 활이므로 貊弓=“貊高麗=몽골”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몽골은 곧 생태환경을 서로 다르게 선택한 고구려=“곰고려=반달熊高麗”입니다. 제 이런 견해가 다른 이들의 그것과 차별화 되는 것은 그런 생태-생업사를 역사배경으로 깔고 문제를, 史料와 史實에 기반을 두고 풀어낸다는 점이라고 저는 봅니다.
물론 이런 시각으로 문제를 잡아본 것은 애초에 제가 아니고 1960년 전후에 북한에서 공부하며 논문을 집필해온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입니다. 그리고 그분 또한 당시의 중공-북한고고학자들의 훌룬부이르몽골스텝-嫩江平原 유적지 발굴 결과보고[북한 고고학자]에서 이런 발상이 비롯된 듯하다. 貊高麗-고구려-“몽골”이라는 발상이지요. 저는 1990년 이래 근 20년간 현지답사를 통해 貊=엘벵쿠=山獺=너구리를 실증해낸 셈이고요. 물론 고구려-高麗=코리=할하=활-弓 또한 최근에 몽골 산사르스텝에서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와 토론과정에서 제가 도출해낸 결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제가 타고난 제 그릇만큼의, 제가 해낼 수 있는 일을 중요한 핵심은 거의 다 이루어냈다고 제 나름으로 자각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제 가족과 저의 희생도 있었고 완전히 외톨이로 소외된, 제가 보아도 불쌍한 제 모습을 제 스스로 들여다보는 지금입니다. 제가 이제 滿身瘡痍가 된 孤魂으로 지금 이 황막한 고비를 홀로 떠도는 신세라 해도, 그러나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을 감사히 여기며 수용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훌룬부이르의 最冷地 根河: 순록유목지[天敵 모기 따돌리는 생태환경] → 이민河 =큰물[大水]이라는 뜻을 갖는 奄利大水[廣開土大王碑文; 거북이가 살 수 있는 훌룬부이르호 태평양권 대만주/물이 차서 거북이가 못사는 바이칼호 북극해권과 대비됨]→ 할힌골=활의 강[弓江]=紇升骨: 고구려국=弓國 창업기지로 정리되는 것입니다. 이민河=奄利大水는 비파형동검 출토 서북 한계선지대이기도 합니다. 결국 “騎馴鹿 순록유목→騎馬 양유목” 발전과정이 동명성왕 전설의 실제역사 내용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렇게 根河=순록유목지=槁離國에서 망명해나온 朱蒙이 할힌골=紇升骨 몽골스텝에서 기마 양유목-기마사술로 대성해 고구려국을 세우고 槁離國 옛터를 되찾는 과정에서 多勿-‘에루구네’[되돌아옴] 전설이 생겨난 거구요.
저는 지금까지 ‘코리’가, 가장 첨단을 걷고 있는 길들여진 유목가축 순록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래서 그 길들이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不馴鹿’이라는 뜻의 오룬 복이라고 부른다고 해석해왔습니다. 에벵키나 다구르 또는 오룬춘어로 Orun이 ‘길들지 않는, 야생의’라는 뜻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를 좀 수정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스키타이 제철기술과 결합해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무서운 弓士集團을 이룬 코리족-궁족들이 순록유목부족들의 우두머리 집단으로 놀랍게 성장해 수림툰드라라는 광대무변한 순록유목기지를 배경으로 출몰하며 기존 목농제국을 못살게 구는 오랑캐-코리양카이-코리(弓)족의 순록치기가 되었던 터입니다. 그러므로 기존 목농제국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길들일 수 없는 오랑캐-‘활을 든’ 순록유목치기 코리치-오룬춘집단이 되는 셈이고, 바로 이 오랑캐-코리족들이 치는 순록이 코리치=오룬춘=오랑캐의 순록 곧 오룬 복이 된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시베리아의 한 중심 바이칼호 올콘섬에 코리족의 시조탄생설화가 깃든 부르칸-不咸 天祭壇이 그 설화와 함께 전승돼 내려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스키타이 제철기술과 결합되어 무서운 弓士戰力集團을 이루는가 하면 스텝에 진출해 騎馬射術이라는 가공할 최첨단 遊牧武力을 확보하면서 훌룬부이르 몽골스텝이라는 거대 유목지대와 嫩江平原이라는 거대 목농지대를 통합지배하면서 치열하게 사회분화가 일어나 고대 유목제국이 성립됐다는 사실은 이미 공인된 터이고요. 고리든 부여든 흉노든, 그래서 모든 동북아 고대유목제국을 낳은 자궁이 훌룬부이르스텝-嫩江平原 곧 이른바 呼嫩平原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槁離-貊高麗(몽골)-고구려도 물론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역사배경을 가지고 생겨나 전승돼온 코리족 族祖 탄생설화요 동명성왕전설의 역사적 실제라 하겠습니다.
다 아는 대로 뿌리를 말할 때는 그냥 몽골이 아니라 Xalxa Mongol입니다. Xalxa란 부이르 호반 일대에 펼쳐진 굴곡이 심한 스텝으로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가 고구려의 창업기지 紇升骨로 보고 있는 바로 그 지대입니다. 1938년에 소련 탱크부대와 몽골경기병의 기습으로 이른바 旭日昇天하던 일본군이 전멸당한 전투지역입니다. 1992년 8월 한․몽 합동 동몽골답사팀이 ‘1938년’이 새겨진 탄피를 줍고 신석기유물 발굴지를 재조사한 곳이기도 합니다. 외몽골-몽골국에서는 이 전투를 ‘할힌골 전투’라고 하고, 내몽골에서는 ‘놈온한(諾門汗) 전투’라고 합니다. 내몽골에서는 놈인 바아타르-弓英雄이 둥지를 틀었던 근거지라 놈온한-弓王=‘고올리칸’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전승되어 옵니다. 궁왕이란 몽골어로 백발백중의 명사수 Tuman 곧 「朱蒙」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40대 전후의 몽골학자 베. 수미야바아타르는 그래서 그 건너편인 서남쪽 부이르 호반 숑크타반톨로고이에 서있는 고올리칸 훈촐로를 동명성왕-주몽의 석인상으로 추정하는 놀라운 탁견을 언급했습니다. 할힌골은 할하의 강-弓江이라는 뜻을 갖는 것으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내․외몽골의 서로 다른 이 전투지역의 이름인 「놈온 한」과 「할힌 골」이 실은 같은 의미의 지명을 서로 다른 말로 표기했을 따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언저리 훌룬부이르 본지를 중심으로 하는 고올리국의 국경선내에 고올리칸=弓王 훈촐로가 서 있는가 하면 그 북쪽 언저리에는 고올리사람들이 논벼농사를 지었다는 거대한 고올리 농장 터가 있어서입니다. 지금도 비가 오면 봇물이 철철 흐르는 수리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큰 돌 맷돌과 돌절구 유물도 있으며 물론 토기파편들도 흐터져 있습니다. 근처 산에 고올리果라는 覆盆子가 있는가 하면 ‘고올리 강’이 있다는 이야기도 언뜻 원주민들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올리 강은 아직 확인치 못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올리=코리=활=할하로 이어지는 ‘할힌골’ 곧 弓江이 아닐까 하고 저는 추정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현지에서는 후래의 불교전설로 윤색되어 고올리칸 상을 라마석인상으로, 놈온한을 어떤 佛僧 곧 라마의 이름으로 구전해오는 혼선을 빚고는 있습니다. 역사연구자들의, 구체적이고 예리한 사료비판을 기다리고 있는 구비전승자료들인 셈입니다.
2009년 5월 28일에 제가 국립몽골대학교 몽골연구센터에서 「순록유목제국-몽골․한국의 弓族 分族論」을 특강으로 說破하자 예상 밖으로 관계전문가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어 질의응답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막연한 자기학문업적 과시식 한-몽동근론은 만발했지만 구체적인 史料와 史實을, 몽골학자가 이미 30여년에 제기한 문제에 토대를 두고 근 20년간 몽골-시베리아-만주 역사현장을 몸소 답사해 할하 오복-弓族 分族論을 주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입니다. 더군다나 몽골사학의 巨木이었던 나착도로지 선생님의 ‘할하-방패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할하-활 곧 ‘할하오복-弓族說’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느 몽골인 언어학자는 지중해의 크레타 섬의 역사와 언어가 ‘코리(弓)태’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며 한글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가림토’ 문자도 코리태와 연관될 수 있어서 소리글자 알파벳의 기원을 소급해 올라가 페니키아문자 성립의 역사배경까지 천착해 봐야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토론장의 열기이었습니다.
손보기 선생님, 고맙습니다.
만수무강하세요!
90년 중반 고올리성터 발굴후 셀렝게 강변을 거닐며, “실마리만 잡히면 한국 고대사 문제들은 정신없이 몽땅 풀려져 나올지도 모른다”고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었던 일이, 일부는 꿈처럼 이렇게 실제로 이루어져가고 있나봅니다.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멀리서나마 선생님의 米壽祝賀 기념잔치상에 이 작고 초라하지만 진실로 속으로 충만한 기쁨을 올려드립니다.
[곁에서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가 "Me too!"라며 주체할 수 없는 듯 즐거움에 넘쳐 있습니다]
2009년 7월초
몽골 산사르[우주]마을 집에서
불초 제자 주채혁 삼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