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공사는 왜 임인년부터 기록을 했을까?
개벽은 본래 천지인을 개벽하는 법이므로 경자(1900년), 신축(2001년)년에도 천지공사를 단행하였으나 그에 관한 기록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자는 천개어자(天開於子)에 따라 하늘이 열리고, 신축은 지벽어축(地闢於丑)에 따라 땅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을 열적에는 인간이 합석할 수 없다.
임인년은 인기어인(人起於寅)에 따라 비로소 사람이 일어설 수 있으므로 임인년에 이르러 개벽도수에 합당하다.
임인은 본래 북방에서 사람이 일어나는 첫 시점이므로 후천 개벽의 도수도 이때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시발은 본래 중앙이므로 기유 1909년에 현무경이 나와야 하지만 그전에 공사판은 경자년부터 시작하여 9변을 하게 된 것이다(경자에서 기유까지는 만9년)
물론 개벽주의 일거수일투족은 천지개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전 생애가 공적인 삶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지공사라고 볼 수있는 것은 임인년(1902년) 부터다. 임인년 이전의 천지공사와 연결되는 기록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해 동안 각지에 유력하사 많은 경험을 얻으시고 신축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대로 할 권능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루지 못할 줄을 깨달으리소 드디어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 도를 닦으사 7월 5일 大雨 五龍噓風에 천지대도를 깨달으시고 탐음진치사종마(貪淫瞋癡四種馬)를 극복하시니 이때 그 절 주지 박금곡(朴錦谷)이 수종을 들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