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鳶)
연날리기는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鳶이란 글자를 보면 弋(주살 익)과 鳥(새 조)가 합했는데, 보통 ‘솔개 연’이라고 한다.
하늘을 나는 솔개처럼 하늘을 높이 나는 연은 서로 같다고 보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주살은 오늬에 줄을 매어 쏘는 화살이다.
오늬는 화살의 밑부분에 판 작은 홈을 가리킨다.
화살이 줄에 잘 걸치지 않고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작은 홈을 파는 경우가 많다.
짐승을 사냥할 적에 사용한 화살을 아끼기도 하고, 또한 사냥한 짐승을 쉽게 찾기 위해서 긴 줄을 오늬에 매다는 경우가 흔했다.
연날리기는 우리민족 뿐 아니라, 일본이나 태국, 중국에서도 민속으로 성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을 많이 풀어 높이 띄우기를 하는 데 중점을 두거나 그림, 모양 등에 관심을 두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연을 날리는 사람의 조종에 따라 상승과 하강, 좌우로 돌기, 급상승과 급하강, 전진과 후퇴가 가능하다.
이는 곧 한국인은 외형보다는 내면의 변화에 더 민감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특히 한국의 연날리기는 바람과의 상관성에 매우 큰 의의가 있다.
바람을 타고 승유지기(乘遊至氣)했다는 ① 사백력지천(斯白力之天)의 유일신(有一神)을 숭상한 우리민족의 습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 記) 41권 <열전>(列傳> 김유신 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1,35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이 돌아가고 진덕여왕이 즉위하였다.
진덕여왕 元年(西紀 647年) 비담(琵曇)과 염종(廉宗)이 여왕은 정사를 잘 해 나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군사를 일으켜 왕을 축출하려 하였다.
이에 진덕여왕이 궁궐을 수비하였다.
비담의 군사는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주둔하였다.
서로 공격하기를 10여일, 그러던 중 병진날 밤 삼경(23시~01시)에 큰 별똥이 월성에 떨어졌다.
이에 비담등이 병사들에 게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별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반드시 피가 흐른다고 하니, 이는 틀림없이 여왕이 패망할 징조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들이 큰 소리로 환호를 하니,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진덕여왕이 그 사실을 알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김유신이 왕께 아뢰기를 “길흉은 오직 사람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중략)..... 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우인 (偶人 : 허수아비·인형)을 만들어 불을 붙이고, 이를 연에 실어 띄우니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 .
그 다음날 김유신이 사람들에게 ‘어제 저녁에 떨어졌던 별이 간밤에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여 적군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註 ① 사백력지천(斯白力之天) - 서방의 하늘을 가리 킴. 가을의 열매 맺는 하늘, 즉 후천 개벽의 하늘을 가리 킴.>
그 전에 과연 연이 있었는지, 아니면 김유신이 최초로 연을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른다.
여하튼 연놀이의 묘미는 바람을 이용하는 데에 있다.
바람은 8괘중에서 손괘(巽卦)에 해당한다.
그 모양은 ☴이다.
밑에 한 개의 음효가 있고, 위에 두 개의 양효가 있다.
음효는 땅이며, 정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양효는 하늘이며 동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땅을 발판으로 하여 상승하는 강력한 기운을 바람이라고 부른다.
땅을 발판으로 한 양효를 가리키는 것으로는 간괘(艮卦)도 있다.
그 모양은 ☶이다.
손괘나 간괘는 다 같이 음효가 밑에 있고 양효는 위에 있지만, 손괘는 양효가 위에 두 개가 있고, 간괘는 양효가 한 개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손괘가 강력한 상승을 한다면, 간괘는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이 정점에 달한 상태다.
그러므로 간괘를 가리켜 山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손괘의 巽을 파자(破字)하면 두 개의 巳를 밑에서 共(함께 공)한 상태다.
巳는 동남방을 가리킨다. 동방은 寅卯가 있으며, 동남방은 辰巳가 있다.
동남방은 가장 밝은 곳이다.
그곳을 가리켜 예로부터 손방(巽方)이라고 하였다.
손방에 있는 님을 가리켜 ‘손님’이라고 한다.
손님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반가운 소식은 ‘밝은 소식’ 이다.
손괘는 전통적으로 巳方을 가리킨다.
선천 낙서시절에도 손괘는 사방에 있고, 후천 ②정역(正易)시절에도 사방에 위치한다.
이처럼 선, 후천을 막론하고 함께 巳에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굳이 글자로 巽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수천 년 전에 이미 우주개벽의 원리를 훤하게 알고 있었다.
바람은 단순한 대류(對流)현상이 아니라, 온갖 희망(바람)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우리민족은 지금도 걸핏하면 ‘바람 쐬러 간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바람은 희망을 달성하기 위한 변화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바람을 이용하는 놀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날리기다.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리민족의 연의 형태는 매우 독특하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민족의 연은 크게 두 가지인데, 가장 흔한 것이 방패연이요, 다른 하나는 가오리연이다.
방패연은 마치 방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요, 가오리도 역시 그 모양이 날랜 가오리처럼 생겼다.
방패연을 보면 머릿살의 양끝을 뒤쪽에서 실로 당겨 이마가 불룩 튀어나오도록 뒤로 젖혀준다.
머릿살 양끝을 맨 줄은 활모양이 되며 이것을 활벌이줄이라고 한다.
따라서 바람을 많이 받아도 활 모양으로 된 방패연 이마 쪽은 바람이 강하게 부딪치지 않게 되어있다. 방구멍 아래 꽁수 줄을 매는데 이것은 바람이 세더라도 연의 아래쪽으로 바람이 흘러 연이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전통 연의 99%이상이 방패연으로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전통연의 형태는 가로와 세로의 크기 비율이 2:3의 비율로 만들어졌다.
방패연은 연의 중앙에 방구멍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 구멍이 있기 때문에 센 바람을 흡수하여 연이 잘 뜨며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다.
방구멍은 세계 어느나라 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연의 특징이다.
방패연을 支持하는 댓살은 다섯 개다.
맨 위에 있는 머릿살, 좌우의 대각선을 연결하는 두 개의 장살, 수직선인 중살, 수평선인 허리 살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나무를 이용하는 것은, 탄력성 때문이다.
대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속을 텅 비운다.
그러기에 강인한 탄력성이 있다.
어떤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대나무의 특성 때문이다.
다섯 개의 댓살은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가리킨다.
다섯 개의 댓살 중에서 네 개가 각기 대각을 이루고 수직선, 수평선을 이루는데 그것은 8방으로 벌어진다.
8방은 8괘다.
조선을 8도로 나눈 것은 이와 같은 이치에서다.
8괘의 중심을 9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연의 8방도 방구멍에서 한데 만나 중심점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것이 9궁이다.
8괘가 만물의 외형을 가리킨다면 9궁은 마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네 개의 댓살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한 개의 댓살, 즉 머릿살은 무얼 의미할까?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태극이다.
사람으로 치면 머릿살은 두뇌를 가리키고, 방구멍은 흉복부를 가리킨다.
영원한 깨달음의 상징인 태극은 두뇌에서 나오고, 그것은 흉복부로 내려가 모든 언행의 원천이 된다. 머릿살이 없으면 연은 잘 망가진다.
연날리기는 이와 같은 8괘 9궁의 법칙을 일러준다는 사실을 과연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다섯 개의 댓살 중에서 머리살은 종이로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본래 태극은 만유의 뿌리이므로 눈에 잘 띄지 않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나머지 네 개의 댓살은 눈에 잘 뜨이게 붙인다. 집을 지을 적에도 기초는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나, 네 기둥은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이치와 같다.
즉, 태극의 이치는 무형이지만, 그것이 천지 4방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과 같다.
어디 그뿐인가?
연에는 반드시 줄이 있어야 하는데, 댓살을 묶는 데에 사용한다.
줄도 역시 다섯 가닥이다.
머리살을 뒤로 묶는 줄을 ‘활벌이줄’이라고 한다.
또 앞의 양 귀퉁이에 한 가닥 씩, 두 가닥이 있고, 또 방구멍의 중심에도 한 가닥이 있으며, 중살의 밑부분 꽁수구멍에 고정 시키는 꽁수줄이 있다.
이 줄을 통해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연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빙빙 헛바퀴만 돌게 마련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의 규격이다.
대개 가로 30센티, 세로 45센치 정도로 하는 게 좋은데, 그것을 가리켜 예로부터 ‘3 : 2의 황금비율’이라고 부른다.
주역에서는 三天兩地라고 하여 양효(-)를 3으로, 음효(--)를 2로 계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