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나 언어라는 게 참 신기한 것들이 많다는 느낌이 안 드나요? 특히 우리문자를 보면 그런 걸 확연하게 느끼는데 두와 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힌트를 드릴까요? 콩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할 적에는 두를 쓰나요? 태를 쓰나요?”
“두부라고 하는 걸로 보면 두가 맞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태부라는 말은 없지요. 두는 일체의 콩과 콩과에 속한 식물을 총칭하는 용어이고, 태는 그 중에서 알이 큰 콩을 가리키는데 씁니다. 여하튼 豆는 제사에 쓰이는 제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래 이 글자는 제기(祭器)나 제수(祭需) 등, 주로 제물(祭物)과 연관되어 나왔습니다. 맨 위의 一은 뚜껑이고, □는 그릇이며, 밑의 ㅛ는 굽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禮라는 글자는 거룩한 제사 의식을 통해서 음십과 양십을 찾아 세우려고 하는 행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0은 1, 2, 3, 4의 합이므로 사물탕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런 예를 문자로 펼쳐내는 걸 禮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예장의통은 문자를 통하여 천지의 十을 드러내는 행위이며, 이것이 곧 의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또한 보통 의통이라 하면 通자를 많이 쓰지만, 현무경에는 統이라고 했지요? 그 이유는 뭘까요?”
“通은 막힌 게 뚫린다는 뜻이고, 統은 본 가닥을 하나로 세운다는 뜻이니까, 후천에 새로운 문명을 세워야 하는 면에서는 統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문산의 견해가 맞는 것 같군요. 通하면 선, 후천이 하나가 되니까 統의 의미도 내포한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通一 보다는 統一이 더 넓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 醫通보다는 醫統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通一은 같은 종류끼리 통하는 것이요, 모든 종류를 다 통하게 하는 것은 統一입니다. 어차피 판 안의 문명을 개벽하는 후천이라면 醫通이 아닌 醫統이 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선생님, 그런데 다른 책을 보면 예장을 가리켜 두문동성수의 신농패(神農牌)이고, 의통은 유사표(有司標)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맞아! 나도 그게 궁금했었는데 …”
학산이 도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음. 그걸 얘기하려면 대순전경의 기록을 보는 게 순서이겠군요. 누가 그 구절을 읽어보세요.”
현산이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11월 동짓달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자 신경수의 집에 머무르시며 벽 위에 글을 써 붙이시니 이러하니라
(두문동 성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