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탄절이다. 웬일인지 동네가 고요하다.
전 같았으면 성탄절 노래로 시끄러울 법도 한데, 작년과 올해에는 이상하게 조용하다.
그 많은 교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아마 해가 더 할수록 성탄절은 그 빛을 바랠 것이다.
왜냐하면 실상이 나타나면 더 이상 허상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간 인류는 종교라는 허상에 싸여 정작 자신의 실체는 보지 못한 채, 얼마나 기나긴 세월을 보냈던가?
이미 전 세계의 교회는 기세를 잃었건만, 유독 한국의 교회만 드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때가되면 서리 맞는 건 시간 문제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성탄이다.
2000년 전에 성인이 태어났다고 해도 자신이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남의 집에 금송아지가 수만 마리가 있다고 하여 자신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아들의 탄생! 그것이 바로 성탄의 의미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목구비가 달린 육신의 형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과 진리다.
사랑은 가슴으로, 진리는 머리로 하는 것이다.
머리는 하늘이요, 가슴은 땅이다. 예수는 말 하기를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곧 개벽이요, 성탄이다.
개벽과 성탄이 다르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매일 매일 우리는 새롭게 죽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무엇이 죽고 살아야 하나?
육신은 죽어야 하고 영은 살아야 한다.
십자가에 달린 것은 눈에 보이는 육신이 아니라, 육신에 속한 욕정과 관습들이다.
2,000년 전 베들레헴에 태어난 예수도 실은 육신이 아니라 영이었다.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십자가를 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가 골고다의 십자가였다.
예수의 공적인 기적이 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것인 줄 아는가?
그 자리에서 왜 예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자여 아직 내 때는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을 했는 줄 아는가?
이것만 알아도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언지 알 수 있건만, 오늘날의 교회는 아직도 깊은 잠꼬대를 하고 있다.
우리의 성탄절은 어느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이 돼야 한다.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매일 십자가를 지고 죽노라'고 하지 않았던가?
본래 12월 25일은 예수의 생일이 아니다.
예수의 생일은 애초부터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의 탄생은 영적인 몸이 태어난 걸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났으며,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여 예수라는 인물이 실존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누구의 몸이 됐건, 성령으로 태어나면 예수의 몸이다.
같은 그릇이라도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요,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다.
성령을 담으면 거룩한 몸이요, 악령은 담으면 마귀의 몸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몸이 돼야 하는가?
그걸 묻고 있는 게 성탄의 의미가 아닌가?
예수가 육신으로 온 걸 시인하라!
그러면 당신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썩어질 육신으로 예수의 영, 진리의 영이 담겨 있다는 걸 시인하라는 말씀이다.
'그날에 내가 새 일을 세상에 베풀리니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고 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상고해 보라.
선천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안았으나, 후천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안는다.
그래야 성탄이 이루어진다.
남자가 여자를 안았다 함은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선천은 1건천을 위주로 9변이 진행된다는 말이고, 후천은 2곤지에서 9복이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말이다.
지금은 비록 외롭고 힘들어도 진실은 반드시 승리하는 법!
영원할 것 같던 화려한 꽃들도 서리가 내리면 하염없이 떨어진다.
이 아침 모든 이에게 진정한 성탄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기원하면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