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성자성신‘도 역시 6수이니 중앙을 가리킨다는 건 상식이겠죠.
’원형이정봉천지도술‘ 아홉 자는 3계의 변화를 가리키는 9궁이요, 사생판단을 굳이 줄을 따로 구분해서 기록한 것은, 낙서에서 용담으로 새롭게 바뀐 동서남북 四正을 일러주려고 한 것입니다.
즉 사람의 四正인 寅申巳亥가 주체가 된다는 걸 말해줍니다.
또는 ’성부성자성신‘ 6은 곤도요, ’원형이정봉천지도술‘ 9는 건도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19자는 十己, 九庚이므로 용담도의 중심으로 己庚이 들어가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19가 중앙수가 되면 8방은 36수가 되는데, 이는 곧 하도를 풀이한 복희8괘도의 수리입니다.
이처럼 하도와 복희도를 드러내고 있으니 원형이정을 받들어 천지도술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용담의 중심 己庚에서 6중앙수를 세우는 것은, 낙서 6건천 자리에서 중심수 5를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법문 싯구에 기록한 것처럼 ’五老峯前二十一‘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지요.”
정도도 ‘五老峯前二十一‘에 대해서는 귀에 익숙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三人同行七十里五老峯前二十一七月七夕三五夜冬至寒食百五除‘가 같이 붙어 있는 구절이었다.
운곡선생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낙서의 6건천으로 용담의 5진뢰가 아버지의 대권을 물려받았으니 老峯인 셈이었다.
帝出於震이라고 하였으니 6건天帝자리에서 5震 장남이 등장할 것을 미리 예시해 놓았으며, 선천의 낡은 봉우리가 무너지고 새로운 천하가 등장할 것을 말했다는 게 확연해졌다.
그러고 보니 ’진래원천신동기(震來遠天新動機)‘라고 한 구절도 자연스럽게 풀리는 걸 느꼈다.
낙서에서는 정동방에 있던 3진뢰가 용담에서는 서북방 5진뢰로 옮겼으니 어찌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정도는 증산이란 분이 왜 개벽주라고 하는지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하였다.
“약유장 2절로 넘어가기 전에 1절의 사생판단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선천낙서는 생사(生死) 판단이고, 후천은 그 반대인 사생판단이라고 하는 건 이미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파심(老婆心)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는 이 글을 통해서 생과 사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계기를 접하게 됩니다.
과연 생은 무엇이고, 사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볼까요?
우리는 왕왕 목숨이 끊어지는 걸 죽음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영혼의 안식을 도모한다고 하는 종교에서도 그렇게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부활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의 죽음이 육신의 죽음이요, 부활도 육신의 부활로 믿고 있습니다.
얼마나 엉터리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성경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말씀을 드렸기에 더 이상 중언부언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의 죽음이나 부활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에 관한 것입니다. 약유장 1절에서 말하는 사생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