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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맹자

영부, 精山 2010. 2. 17. 07:54

공자는 서학의 대성인이라 하고, 맹자는 동학의 대성인으로 현무경에는 비유를 하고 있는데, 그건 왜 그랬을까요?

공자나 맹자는 다 같이 동양의 성인들인데 무슨 근거로 공자를 서학이라 했고, 맹자를 동학이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공자와 맹자의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군요.

그래야 공자를 서학이라 하고, 맹자를 동학이라고 한 이유를 알기 쉽습니다.

공자는 주나라 말기, 춘추 시대를 겪으면서 극심한 사회를 목도(目睹)했으며, 그렇게 된 원인으로 도덕적인 타락을 주장했지요.

때문에 그가 제안한 방법은 바로 인(仁)이었습니다.

공자의 인은 인간이 타고난 ‘내면적 도덕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고, 조금 다르게 말하면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 대한 실천 덕목으로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서(恕) 등을 말하였으며, 특히 예를 중시했지요.

여기서 예란 순자와 비슷하긴 합니다만 조금 다릅니다.

다만 예로서 다스리는 방안을 제시한 면에서는 똑같습니다.

예란 인간이 행해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합니다.

즉, 인을 바탕으로 한 예의 실현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에 의해 공자의 정치와 사상은 덕치(德治)를 바라보았고, 그것이 덕치주의로 나타났으며, 정명(正名)정신이라 하여 지위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강조하였습니다.

정명은 군(君)과 신(臣)의 분리, 부(父)와 자(子)의 분리와 같습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게 바로 그 요체(要諦)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뚜렷한 만큼 그것에 상응하도록 의무를 지고 또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강조하였지요.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공자의 대동사회(大同社會)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맹자의 사상을 살펴볼까요?

맹자는 흔히 성선설(性善說)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가 춘추시대를 겪었다면 맹자는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로가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지요.

공자가 도덕적인 타락을 혼란의 원인으로 보았다면, 맹자는 혈기와 욕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보았습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인과 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의 원인에 대한 대책으로 시비를 분별할 것을 말하고, 의를 쌓음으로써 대인, 대장부의 기개를 가지라 강조하였지요.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어질다 보았기에 4단(四端)과 4덕(四德)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4단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고, 4덕이란 인, 의, 예, 지입니다.

공자의 사상 같은 경우에는 "능력 있는 자"를 기준으로 한 귀족중심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가 묻기를 "스승님, 농사(農事)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런 것을 알아서 무엇에 쓰려 하느?"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철저하게 정명을 따름으로써 각자의 위치에 맞추어 자신을 발전시켜 제자리에서 일을 함으로써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지요.

그러나 맹자는 조금 달랐습니다.

민본주의에 입각하여 "왕도정치"를 주장하였지요.

여기서 민본주의는 백성을 근본으로 한 덕치인데, 맹자의 왕도정치 사상에 그것이 여실(如實)히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