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절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천하에 水氣가 말랐으니 수기를 돌리리라 하시고 뒷산 피난동(避難洞) 안씨 재실(安氏齋室)에 가사 그 앞 우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재실에 가서 연고를 물어오라 내성이 대답하고 들어가서 물으니 사흘 전에 재직이는 죽고 그 아내만 있거늘 돌아와서 아뢴대 가라사대 다시 행랑에 가 보라 딴 기운이 고이고 있도다 내성이 행랑에 들어가 보니 봇짐장사 남녀 두 사람이 들어있거늘 돌아와서 아뢴대 이에 재실 대청에 오르사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게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데 수운가사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과연 한 사람이 가사를 내오 올리고 물러가거늘 그 책 중간을 펴 드시고 한 절을 읽으시니 하였으되 ‘시운벌가벌가(詩云伐柯伐柯)여 기즉불원(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만 이는 도시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지사(目前之事) 쉽게 알고 심량(深量)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末來之事) 같잖으면 그 아니 내 한인가’ 하니라 처음에 가는 소리로 한 번 읽으시니 맑은 날에 문득 뇌성이 일어나거늘 다시 크게 읽으시니 뇌성이 대포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지진동하며 또 지진이 일어나서 여러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드려지거늘 내성을 명하사 각기 일으키니라>
해설
선천은 수기가 말랐다. 그것은 낙서의 중심에 5土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중심에서 물이 흘러내려야 하는데, 그것은 용담의 중심에 6수를 집어넣어야 한다. 낙서의 중심은 5戊였으나, 용담은 6己다. 피난동은 선천의 난을 피하는 곳인데, 거기에 安氏재실이 있으니, 安은 후천의 음을 편안하게 하는 상징이다. 우물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젓고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한 것은 재직이가 죽고, 그 아내만 남았으니 음양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랑에 남녀가 있으니 음양이 고르게 되었다. 이는 선천의 음양은 물러가고 후천의 음양이 시작함을 의미한다. 봇짐장사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으로 연명하는 선천에서 멸시 받는 천민(賤民)이다. 후천에는 반상(班常)의 구별이 무너져서 음양이 고르게 되어야 한다.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게 한 것은, 서방(신묘, 신유)에 있던 자성(觜星)을 부르기 위함이다. 신묘, 신유는 후천은 서방 금(金)기운이 주도를 하는데, 특히 卯酉가 세수를 물고 나와야 태세에서 세수가 나와 음양이 고르게 되기 때문이다. 수운가사에 이르기를 ‘伐柯伐柯)여 기즉불원(其則不遠’이라고 한 것은, 도끼로 나무를 벨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무를 벤다 함은 서방의 金, 즉 도기로 동방의 木을 베어서 후천의 동량지재(棟樑之材)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一과 十은 각기 도끼와 도끼자루를 가리킨다. 나무를 벨 날이 멀지 않았다 함은, 十과 一을 합한 11귀체가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가까이 있지 아니하니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생각 없이 살다가 끝날 때 맘 먹은대로 안 되면 그 어찌 한이 되지 않겠는가? 안내성은 안씨 재실을 대변하는 이름이므로 그가 정신 잃은 사람들을 깨우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