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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한국으로 보은신을 넘김

영부, 精山 2010. 3. 18. 06:09

105절

 

<하루는 원일과 덕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희 두 사람이 덕찬의 모 방을 치우고 이레 동안을 한 도수로 하여 문밖에 나가지 말고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이 재판으로 중국 일이 결정되리라 두 사람이 명하신 대로 이레 동안 전심으로 연구하더니 이레가 지난 뒤에 원일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중국 재판을 어떻게 하였느냐 대하여 가로대 淸朝가 실정하고 열국의 침략을 당하여 백성이 의지할 곳이 없사오니 이는 하늘이 주는 기화라 선생의 무상한 권능으로 이를 평정하시고 제위에 오르사이다 옛말에 天與不受면 反受其殃(하늘이 주는 걸 받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이라 하였나이다 개벽주 대답치 아니하시고 다시 덕겸에게 물어 가라사대 너는 어떻게 재판하였느냐 덕겸은 이레 동안 연구하여도 요령을 얻지 못하였더니 묻는 말씀에 문득 생각이 나서 대하여 가로대 物重 地大하기 세계에 짝이 없고 예악문물이 크게 발달 되었던 大明 제국의 산하와 인민이 夷狄의 창호를 받던 청국에게 정복 되었으니 어찌 원한이 맺히지 아니하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와 주권을 회복하게 함이 옮을까 하나이다 개벽주 무릎을 치시며 가라사대 네가 재판을 잘 하였도다 이 재판으로 인하여 중국이 회복되게 되리라 하시니 원일이 불평하여 가로대 이제 명나라 백성의 해원공사로 돌리면 우리나라 일은 어떻게 하려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중국 인민이 부흥하여야 우리도 이어서 부흥하게 되리라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조공을 받아 왔으니 이 뒤로 25년 만이면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이 넘어오리라>

 

해설

 

이 공사는 무신년(1908년)에 행한 것이니 25년이 차게 되는 해는 임신년(1932년)이다. 이 해에 상해 홍구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하였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상해에 있던 우리의 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 한국 독립 운동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 후에 실제로 장개석은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계미년(1943년) 12월 1일에 미국, 영국, 중국이 대표가 모여 카이로선언을 할 적에,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문구를 발표하였으니, 이 모두가 중국이 한국에 대한 보은신이 넘어 온 도수임을 누가 알리오! 또한 지금 중국이 세계적인 부흥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한국에게 보은하는 방편으로 될 게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