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용담(龍潭)으로 본 천부경과 지부경
이번에는 용담을 기준으로 하여 살피기로 한다.
2, 7
3, 8 6 4, 9
(1)
5, 10
용담은 중앙에 6이 들어간다. 이는 곧 모든 숫자가 낙서와 합하여 11귀체를 이룬다는 걸 의미한다. 11귀체는 절대평등의 이상세계다. 사람의 마음에서 평등세계가 이루어져야 물질계도 평등세계가 이루어져 만물의 염원인 이상세계가 펼쳐진다. 천부경에서는 ‘一析三極’을 논하였으나, 지부경에는 ‘折化三三‘이라고 한다. ’일석삼극‘은 우주만물을 가른 3획을 의미하지만, ’절화삼삼‘은 그것이 각기 11귀체한 상태를 가리킨다.
1折 : 1 + 10 = 11 2 + 9 = 11 3 + 8 = 11
2折 : 4 + 7 = 11 5 + 6 = 11 6 + 5 = 11
3折 : 7 + 4 = 11 8 + 3 = 11 9 + 2 = 11
위에서 보는 것처럼, ‘절화삼삼’은 낙서와 용담의 숫자가 모두 11귀체를 이루어 각기 3化한 상태다. 折이란 글자를 보면 손(扌)에 도끼(斤)를 들고 나무를 베어 낸 형국이므로 나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모습이다. 析이 나무를 도끼로 베거나 해부한 모습이라면, 折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모습이다. 析은 벌어진 것을 가리키는 반면, 折은 벌어진 것을 한데 모아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용담도수에 등장하는 숫자의 의미다. 앞서 말한 ‘정구포일‘과 ’동십생일‘ 등은 바로 용담도를 두고 한 말이다.
’天一貫五七‘은 ’하늘은 5와 7을 하나로 일관한다‘는 말인데, 4(天中), 5(地中), 6(人中)에서 보는 것처럼, 하늘(7)은 地中數 5와 조화를 부려 35仙數로 사답칠두락(寺畓七斗落)을 경작한다. 땅(8)은 天中數 4와 조화를 부려 32相을 지닌다. 32상이 음양으로 벌어진 것을 가리켜 64괘라고 한다. 사람(9)은 人中數 6과 조화를 부려 54 (1을 합하면 대정수)가 된다. 낙서의 중앙에는 5가 들어갔으나, 용담의 중앙에 6이 들어갔다. 5는 물질이나 형상의 중심을 가리키고, 6은 11귀체의 중심이다. 따라서 용담의 중심에 6이 들어간 것은 천부경의 중심에 6이 들어간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紳龜負九五 極圖本이라고 한 것은, 낙서가 모든 사물의 변화를 가리키는 근본이라는 뜻이다. 이로 보건대 천부경이나 지부경은 하도나 낙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도나 낙서, 용담의 3대 상서는 우주와 자연, 인생의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根이라 한다면 하도는 苗, 낙서는 花, 용담은 實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어떤 학문이건, 3대 상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실상을 알 수 없다.
특히 용담을 통해서 확고하게 알 수 있는 것은, ‘人中天地一‘과 ’五七一妙衍‘이란 문구다. 인중천지일을 대개 ’천지가 사람 속에서 하나 된‘ 정도로 해석들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해석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부경의 ’天一貫五七, 地一貫四八, 人一貫六九‘를 통해 더욱 확실한 내용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용담을 통해 더욱 확연해지는데, 그것을 크게 두 가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용담도의 5진뢰와 7손풍을 살펴보자. 5진뢰는 서북방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낙서의 6건천이 차지했었다. 낙서의 1감수, 2곤지, 3진뢰, 4손풍, 5중앙, 6건천을 합하면 21로 侍天主를 상징하는 수가 나온다. 이걸 가리켜 ‘五老峯前21’이라고 한다. 여기서 ‘五老峯’은 용담의 5진뢰를 가리키는데, 복희도와 문왕도의 시대를 거쳐서 마지막 5진뢰가 됐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이것을 대부분 지금까지 해석한 글들을 보면 ‘다섯 개의 옛 봉우리’라고 하여 특정한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가리키거나, 아니면 멋대로 다섯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허다(許多)한데, 그런 것이야말로 혹세무민의 전형(典型)이다.
물론 용담도는 복희도와 문왕도를 거쳐 3변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老峯‘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 자리는 문왕도의 6건천이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 아닌가? 6건천은 하늘이다. 따라서 옛 하늘이기에 ‘老峯‘이다. 본래 서북방은 높은 산맥과 봉우리들이 즐비한 곳이므로 역시 ‘老峯‘이다. 굳이 ’다섯 개의 봉우리‘를 가리켜야 한다면 문왕도의 1감수, 2곤지, 3진뢰, 4손풍, 6건천의 다섯 개라고 할 수 있다. 5는 중앙이므로 봉우리가 아니다.
1, 2, 3, 4, 6과 중앙의 5를 합한 21은 시천주를 상징하는데, 21이 시천주를 나타낸다는 근거는 무얼까? 1, 2, 3은 天變이요, 4, 5, 6은 地變이다. 이 둘을 합한 숫자가 21이다. 侍天主는 天主를 내 몸에 모셨다는 의미인데, 천주는 천지의 주인이요, 천의 합 6(1, 2, 3)과 지의 합 15(4, 5, 6)을 합한 수 21이다. 문왕도의 하늘(6건천)이 있던 곳으로 용담도에 5진뢰가 들어가 大權을 물려받았으니 이제는 고생만 하신 부모님을 편히 모시는 효도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5진뢰의 진괘(☳)는 坤(☷)에서 1양이 나오는 상태다. 본래 서북방의 戌亥之間은 가장 어두운 3음이 있던 곳이고, 음이 다하면 양이 나오는 이치에 따라 당연히 1양이 시생하는 진괘가 그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반대편인 동남방의 辰巳之間은 가장 밝은 3양이 있던 곳이므로 양이 다하면 음이 발생하는 이치대로 1음을 상징하는 손괘(☴)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문왕도에서는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가 용담도에 이르러 비로소 서북방에는 5진뢰가, 동남방에는 7손풍이 자리를 잡아 뇌풍상박(雷風相搏)을 하고 있으니 천지가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다. 5진뢰와 7손풍이 뇌풍상박을 하는 중심에는 6이 있으니, 이를 천부경에서는 5와 7 사이에 있는 1이라고 하여 ’五七一‘이라고 하였으며, 지부경에는 ’天一貫五七‘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지존문명(낙서)에서의 시두였던 子時에서 후천의 시두인 巳時까지는 5변(자 - 축 - 인 - 묘 - 진 - 사)을 하지만, 巳時에서 子時까지의 변화는 7변(사 - 오 - 미 - 신 - 유 - 술 - 해 - 자)을 하고 있으니 ‘5와 7이 하나 되어 묘연 하는 셈이다. 이 또한 인존문명에서 가능한 것이니, ’五七一‘의 一은 ‘人中天地一’의 一을 가리킨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人中天地一’은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一終無終一’이라고 하였으니 그것만으로는 아직 마지막 핵심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다. 그 답은 ‘一終無終一’과 ‘十始有始十’의 차이에 들어 있다.
7. 七八九運三四
천부경에는 ‘七八九運三四’가 있다. 大三이 합하여 六을 이루고, 거기에서 7, 8, 9가 생하고, 3과 4를 움직인다‘는 풀이를 할 수 있다. 대삼합육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수박을 세 번 가른 표면에 나타난 여섯 개의 十字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으니, 첫째는 천지인 3계의 음양이 어울리면서 생긴 것이요, 둘째는 수박의 내부에 생긴 人3변 7, 8, 9를 제한 十字, 즉 천3변과 지3변의 합을 가리킨다. 여하튼 대삼합 6에서 7, 8, 9가 나오고, 거기에서 3과 4가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3은 천지인이요, 4는 천지인의 4방이나 4상을 가리킨다. 天4는 子午卯酉이고, 地4는 辰戌丑未이며, 人4는 寅申巳亥다. 수박을 가른 세 개의 선과 지지를 연결하면 다음과 같다.
巳 酉 辰 申 酉 丑
辰 戌 卯 酉 申 寅
卯 亥 寅 戌 未 卯
寅 丑 子 丑 子 亥 午 巳 辰
(천존문명) (지존문명) (인존문명)
이처럼 3과 4는 12지지를 만들어내는데, 그 앞의 ‘一積十鉅’의 十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는 열 개의 천간을 가리킨다. 천간은 공간을 가리키고, 지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결국 시공의 체와 변화를 천부경은 얘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12지지는 본래 천지인 3신이 4방이라는 공간에서 변화하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하늘이 4방으로 운행하는 것은 子(天水), 午(天火), 卯(天木), 酉(天金)으로 나타나고, 땅이 4방으로 운행하는 것은 辰(地木), 戌(地金), 丑(地水), 未(地火)로 나타나며, 사람이 4방으로 운행하는 것은 寅(人木), 申(人金), 巳(人火), 亥(人水)로 나타난다. 천간과 지지가 맞물려 甲子, 乙丑, 丙寅 … 癸亥와 같은 60갑자를 형성한다. 60갑자는 천지의 음양이 운행하는 상태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도구다.
3과 4의 이치를 인체에서 찾는다면, ‘성, 명, 정‘ 혹은 ’정, 기, 신‘이 머리에서는 이목구비라는 4상을 통해 드러나고, 몸통에서는 4지라는 수족을 통해 드러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목구비의 형상을 잘 살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정, 기, 신의 상태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4지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진다. 이목구비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중심의 뇌를 통해 몸통의 사지로 전달되고, 사지는 복부의 중심에 있는 5장의 기운을 받아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5관과 5장은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이라는 7정으로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는데, 이를 가리켜 ’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이라고 한다. 천지인 3신은 반드시 춘하추동이라는 4時와 동서남북이라는 4空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를 본떠 인간의 정기신도 이목구비와 4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니 ’인체 = 우주’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공산주의도 아니며, 자본주의도 아닌 가장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의 체제가 나온다.
이처럼 3과 4가 조화한 12는 다양하게 쓰이는데, 하루는 12시간이요, 2일 24시간은 24절기의 근원이며, 3일 36시간은 부활의 시간이다. 4일 48시간은 옥추문을 여는 48신장이며, 5일 60시간은 천지인 3계에 있는 4상의 합(20)이며, 6일 72시간은 8괘와 9궁을 합한 둔갑의 기본이다. 7일 84시간은 하늘의 28수가 3변한 상태이며, 8일 96시간은 1일을 완성 시키는 96刻과 동일하다. 9일 108시간은 108번 변화하는 번뇌와 망상을 상징한다. 이런 식으로 거론하자면 꿑이 없을 것이므로 이만 생략하기로 한다.
8. 人中天地一
천부경의 처음에 등장하는 ‘一始無始一’의 ‘一’과 끝에 등장하는 ‘一終無終一’의 ‘一’은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를까? 대부분의 천부경 해설을 보면 둘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둘은 분명 다르다. 왜냐하면 ‘一始無始一’의 ‘一’은 ‘人中天地一’이 아니기 때문이다. ‘人中天地一’은 ‘一終無終一’의 ‘一’이다. ‘人中天地一’은 사람 속에서 천지가 하나 된 상태를 가리킨다. 천지에서 사람이 나왔지만, 사람 속에서 천지는 하나가 된다. 사람이 없어도 천지 대자연은 존재한다. 화성이나 금성, 목성 등을 보라. 생물체가 없어도 오랜 세월 그들은 끄떡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無人이면 空殼이라고 한 개벽주의 말씀처럼 천지의 핵은 인간이다. 아무리 드넓은 천지라고 하여도 자신의 의식에서 천지가 밝아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 포기의 풀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나 가치를 알아주는 건 인간이다. 인간이 사물의 이치에 밝아진 결과, 오늘과 같은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昻明人中天地一’을 하라고 천부경은 가르친다.
‘사람 속에서 천지가 하나가 되어 의식을 드높여라’는 말씀인데, 그걸 가리켜 侍天主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가리켜 如來라고 한다. 이처럼 표현은 다르지만, 각 종교에서 지향하는 궁극적인 실체는 같다. 천부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안점은 ‘侍天主’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이걸 예전에는 단군이념이라고 하여 ‘開天立敎, 弘益人間, 理化世界’라고 하였는데, 이걸 한 마디로 축약한 것이 바로 동학의 ‘侍天主’다. 따라서 선천의 우리민족의 이념을 후천에 정립한 것이 동학의 시천주다. 시천주는 동학의 창시자 수운 대신사께서 서기 1860 경신년 음 4월 5일에 하늘로부터 받은 21자 주문을 가리킨다. 먼저 받은 것이 降靈呪 ‘至氣今至願爲大降’이었고, 다음에 받은 것이 13자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였다.
강령주 8자는 후천의 8대문을 가리키고, 13자 시천주는 天有 13도를 가리킨다. 8대문은 수박을 세 번갈라서 생긴 8조각이니, 이는 곧 용담 8괘를 가리키고, 13도의 중심수 7은 수박의 내부에 생긴 大十字를 가리킨다. 수박의 표면과 내면에 생긴 여섯 개의 十字는 12지지를 가리키는데, 12개를 합한 또 하나의 十字까지 합하면 13개의 십자가 생긴다. 13의 중심수는 7이다.
12개가 5방을 돌면 60갑자가 되지만, 천유 13도가 5방을 돌면 65가 된다. 그러나 중심은 항상 무형이므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64인데, 이를 가리켜 64괘라고 한다. 강령주 8자가 최대로 벌어지면 8 × 8 = 64괘요, 시천주 13자가 5방을 돌아서 나타나는 것도 13 × 5 = 65 -1(천원수) = 64괘다.
‘昻明人中天地一’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천지의 軸이 사람 속에서 하나 되는 걸 가리킨다. 하늘의 축은 자오묘유이고, 땅의 축은 진술축미이며, 사람의 축은 인신사해다. 수박을 가른 세 개의 線은 바로 이 3대축을 가리킨다. 천존시대에는 땅을 사용하므로 진술축미가 동서남북을 차지하였고, 지존시대에는 하늘을 사용하므로 자오묘유가 동서남북을 차지하엿다. 인존시대에는 천지를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동서남북에 인신사해가 들어간다. 천존시대에는 丑時로 시두를 삼고, 지존시대에는 子時로 시두를 삼으며, 인존시대에는 巳時로 시두를 삼는다.
정역을 반포하신 일부선생께서는 후천의 시두를 亥時로 삼았으나, 개벽주께서는 이를 가리켜 ‘한 수가 미진하였도다’고 하였다. 일부 선생은 방위를 바꾸지 않은 채, 북방의 陽水인 子水가 아니라 陰水인 亥水에서 만물이 시작하는 걸로 보았으니, 이는 선후천의 주도는 양에서 음으로 변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셈이다. 그러나 개벽주는 음양의 변화는 물론, 방위와 5행의 변화까지 망라하였으니 그래야만 온전한 개벽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존문명의 변화가 진정한 ‘人中天地一’이다. 인존문명에서 방위가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은 땅과 상대적이요, 땅은 하늘과 상대적이지만, 인간은 천지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늘의 무형과 땅의 유형적인 요소를 한꺼번에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어느 하나만 상대할 수 없으니, 어떨 수 없이 스스로가 상대적인 존재다. 이른바 自立이라 함은 바로 이를 가리킨 말이다. ‘人中天地一’은 인간이 천지의 품에서 벗어나는 자립을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天이라는 글자에서 두 개의 一(二)를 벗겨내야만 人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