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좌도에서는 자신들의 행위를 납득시킬만한 이론적인 배경이나 여건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신적인 주술행위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지.
그러나 알고 보면 주문이나 부적은 인간의 알음알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
왜냐하면 부적이나 주문도 역시 문자나 언어를 매체로 하고 있기 때문일세.
다만 상징적인 문자나 언어로 아주 짧으면서도 함축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다를 뿐일세.
그런데 후천의 지상선경을 건설하는 동학의 핵심으로 주문과 영부를 하늘이 내려 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미신적이며 주술적인 요소가 다분한 것으로 과학만능주의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과연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사실 현무경이 천지개벽의 결정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동학에서는 왜 주문과 영부를 핵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됐을까?”
운곡법사의 말씀을 듣기 전에도 이미 정도는 그런 의문이 있었다. 사실 교회에 다니던 정도가 현무경을 처음에 접했을 때에 부적과 주문이 맘에 걸렸던 적이 있었다.
“저도 처음에는 영부와 주문이 걸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문은 자연의 이치나 깨달음을 아주 간단하게 축약해 놓은 상징적인 문구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그런 게 없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주기도문’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내용을 집약해 놓은 것으로, 그 또한 주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아마 그걸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표기한다면 ‘聖父之名臨天國願如意成於天亦於地’라고 할 수 있는데, 주문의 형태와 똑 같거든요.
길게 늘어놓는 것보다 간단하게 해서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게 뜻을 새기고 기를 강화시키는 데에는 더 큰 효력이 발생한다는 걸 저도 체험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러기 전에는 심지어 스님들이 염불(念佛)하는 것도 미신으로 여겼습니다.”
“오! 교회 다닌 적이 있었군?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고 영부를 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
그래도 용케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군.
여하튼 주문은 자네가 말한 것처럼 자칫하면 길게 늘어져 지루한 감을 줄 수 있는 깨달음이나 기도의 내용을 짤막한 문구로 만들어 핵심적인 것만 반복적으로 암송하려고 나온 걸세.
영부도 마찬가지지.
다만 주문은 음성으로 하는 것이며, 영부는 색(色)으로 하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