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주문은 음성으로 하는 것이며, 영부는 색(色)으로 하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소리와 색! 이 두 가지는 모든 사물의 기본적인 음양일세. 소리가 동적(動的)인 것이라며, 색은 정적(靜的)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경우에 따라서는 소리가 정적이며, 색이 동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음이냐, 양이냐 하는 게 아니라, 두 요소를 한데 조화해야 한다는 사실일세.
주문은 소리를 통해서 기를 느끼려는 방편이고, 영부는 형상을 통해서 이치에 도달하려는 방편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걸세.
선천 종교에서는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으라’, 혹은 ‘부처님을 믿으라’고 하였으나, 동학에서는 주문과 영부를 통해 자신에게 본래 주어진 한울님의 기운과 이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키워내 마침내 ‘하나님’이나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라고 하는 점이 다르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걸세.
이건 매우 중요하니까 깊이깊이 새겨야 하네.”
밤늦도록 정도는 운곡법사의 말씀을 경청하였다.
막걸리를 먹어서 그런지 저녁밥은 생각이 없었다.
정도 외에도 몇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의산이 막걸리를 전기포트에 따스하게 데웠다.
그리고는 알로에 혼합물을 3 : 2의 비율로 부었다.
그걸 마셔 본 일행들은 한결 같이 탄성을 자아냈다.
정도의 입맛에도 역시 그냥 막걸리를 마시는 것보다 한층 더 맛이 있었다.
그야말로 맛좋고, 영양가가 풍부하며, 적당한 취기(醉氣)까지 동시에 제공하는 음료수로 막걸리가 격상(格上)되었다.
볼이 약간 불그스름해진 의산이 입을 열었다.
“법사님. 천도교에서는 동경대전의 天主를 ‘한울님’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이 옳은 건지, 그른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 아마 당시에 천주교에서 ‘천주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과 구분하기 위하여 일부러 ’한울님‘으로 했을 거라는 추측(推測)을 많은 분들이 하고 있는데, 나도 거기에 동감일세.
수운선생께서 ’天主‘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천주교인으로 몰려서 순교를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말도 일리 있다고 보네.
주위에서 수운선생에게 제발 천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운선생은 결코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지.
여하튼 세상 사람들은 천지자연이 운행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저절로 돌아가는 줄로 알았지만, 그런 건 모두 다 ‘天主造化之迹’이라고 수운선생은 밝혔지.
‘천주님의 조화의 발자취‘가 대자연의 운행이요, 역사와 사시사철의 영원한 법칙이라는 말씀이거든.
이걸 선천에서는 ’元亨利貞‘이라고 했지.
이처럼 대자연의 운행은 아무 계획도 없이 멋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도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무위이화(無爲而化矣)‘인줄로 알고 있으니 어리석기 한량 없는 노릇으로 수운 선생의 눈에는 비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