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는 正易에서 15존공(尊空)이라는 말은 들어봤으나 105존공이라는 말은 처음인지라 의아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40 × 9가 360 일원수를 이루는데, 그것은 10무극이 4방에 충만한 채 9궁을 일주한 상태를 가리키는 도수일세.
거기에 본바탕인 5토와 10토를 합하면 375라는 原易의 도수가 나오지.
원역에서 일원상수를 제하면 15가 나오는데, 일원상수에서 보면 존공한 것처럼 보이거든.
그러나 조화를 가리키는 仙法의 도수로 본다면 5 × 7 = 35도수가 나오지.
그것이 천지인 3계로 벌어지면 105가 나오는데 이 또한 仙數라고 한다는 건 누차 설명한 적이 있었지.
3계가 모두 조화를 부려야 비로소 온전한 개벽이 이루어지는 법이거든.
그러니 선천낙서의 동지에서 105수를 제하고 들어간 후에 비로소 후천황극력의 정월 초하루가 나오는 법일세.”
“그런데, 법사님. 이 문구를 보면 수운선생께서 신비한 체험을 하는 걸로 나와 있는데, 실제로 이런 체험이 가능한가요? 그것은 곧 특정한 신명계나 영계를 인정한다는 얘기인가요?”
정도는 사실 영계를 믿는다거나, 신명계가 따로 있다는 식의 말들은 별로 믿음이 안 갔다.
왜냐하면 그런 건 꿈이거나 환상에 지날 따름이지, 결코 실제상황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럼 수운선생께서 거짓말을 했을까?
그러기 때문에 그냥 대자연의 법칙을 신으로 믿는 일반인들과 수운선생의 신앙을 애초부터 달랐지.
용담유사의 기록을 보면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고 하는 구절이 있는 걸 보아도 수운선생은 절대적인 신을 믿었다는 걸 알 수 있지.
그런 것만 본다면 기독교가 믿는 절대적인 유일신의 개념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신은 창조주요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이원론(二元論)을 고수하는데 비해서, 수운선생께서는 신과 인간은 동일체하는 일원론(一元論)이라는 게 다르지.
기독교의 원리에서는 인간은 절대로 신과 같이 될 수 없고, 만약 그와 같은 욕망을 지니는 순간부터 이미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아담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고 가르치지.
하지만 수운선생께서는 시천주(侍天主)라고 했으며, 그것이 결국 인내천(人乃天)으로 귀착되고 있다는 게 다를세.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독교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으며,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낸 아들인 예수 구세주를 믿고 그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타력신앙(他力신앙)이라면, 동학은 사람의 내, 외를 막론하고 무소부재하신 분이 한울님이기에 경천(敬天)도 해야 하며, 경물(敬物 = 敬地), 경인(敬人)도 해야 한다고 하는 걸세.
즉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믿고 모시는 게 아니라, 사람이나 물질도 한울님의 다른 모습, 즉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한 상태로 믿는 게 다르지.
그래서 동학의 가장 큰 핵심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고 하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