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수운선생은 영부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으신 건가요?
분명히 득도하실 적에는 영부를 받으셨다고 돼 있는데, 그 후로 21자 주문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게 남아 있지만 영부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게 이상합니다.”
“음, 그건 아까 말한 것처럼, 수운 선생은 동세를 맡았기 때문이야.
영부는 음이요 정적인 것이므로 개벽주가 전해야 하거든. 하긴 지금 천도교에서도 영부라고 내세우는 게 있긴 있지.
그걸 그들은 궁을도(弓乙圖)라고 하더군.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후세 사람들이 그린 것이고, 수운선생이 직접 하늘로부터 받았던 건 아니야.
영부는 현무경에 개벽주께서 상세하게 붓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걸 보면 될 것이고,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동학의 핵심은 21자 주문에 있다는 것만 알면 되네.
한 마디로 21자 주문, 즉 기도주는 선천의 종교와 문화를 쓸어버리는 청소기라고 할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나온 현무경의 영부는 후천 5만 년의 영대(靈臺)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걸세.
따라서 기도주의 내용은 선천문화를 일거에 쓸어버리는 위력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기도주를 다시 한 번 음미할 필요가 있지.”
운곡법사는 백지 위에 커다랗게 ‘至氣’를 썼다.
“至氣는 단순하게 지극한 기운이라는 식으로 알면 곤란하네.
그것은 ‘외유기화내유신령‘하는 성, 경, 신이 하나 됐을 적에 맛볼 수 있는 기라고 해야 할 걸세.
’내 맘이 네 맘‘이라고 하는 吾心卽汝心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지기라고 할 수 없지.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말씀이 있으니, ’너는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는 말씀이야.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많은 수도인들이 말하기를 ’마음을 닦거나 수련을 하여 도를 깨닫는 줄‘로 알고 있으나, 논학문에 의하면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네.
수운 선생이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修而煉之‘하고 ’制其文敎人‘하라고 했지 않았나? 즉 도에 이르지 못했으면 닦을 것도 없고 단련할 것도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닦거나 단련한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생명의 씨, 즉 깨달음을 잘 간수하고 보전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말씀이야.
보물이란 것은 사람이 닦고 갈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늘로부터 받아야 하고, 그 받은 것을 갈고 닦는다는 말이 나왔다는 얘기일세.
흔히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강조하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무얼 닦고 단련한다는 것인지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야.”
운곡법사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도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도 역시 ‘修心’이니 ‘修身’이니 하면서 여러 가지 수련에 정진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운곡법사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런 것들이 사실 막연햇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