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태가 점점 성장하여 마침내 백회를 뚫고 밖으로 출입을 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몇 미터도 가지 못하지만 수련의 깊이가 더할수록 점점 더 활동반경이 넓어진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천리 길도 순식간에 갈 수 있을 정도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도는 아직까지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도태가 형성됐다고 하는 사람들은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가까워 오고 있으나 정작 그들은 그 전 보다도 못한 상태에 있었다.
도태가 육신과 같은 형상을 띠고 있다는 것도 고전에서만 보았을 뿐, 실제로 그런 건지 아닌 지 하는 것도 솔직히 의문 투성이었다.
그러므로 정도에게는 양신을 하고, 머리의 백회를 통해서 출신을 한다는 말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운곡법사는
‘養神은 동학의 養天主와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게 좋을 거야.
’천주’나 ‘신’은 결코 백회로 출입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닐세.‘
라고 하였다.
정도가 다시
’수운선생께서도 허공에서 신선의 음성이 들렸으며 주문과 영부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천주나 신이라는 존재는 외부에서 몸으로 들락날락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요?‘
라고 되묻자
’물론 신이나 천주는 없는 곳이 없지.
외부나 내부나 어느 곳에나 다 존재하겠지.
그러나 그걸 자신의 의지대로 물체를 만들어서 몸 밖으로 내보내고,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가 신이라면 굳이 몸 안에서 양신을 하고, 더욱이 출신을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신과 통하는 게 백배 더 나은 게 아닐까?
비유하자면 서로 막혀서 군데군데 머물러 있던 웅덩이의 물들이 통로가 연결되기만 하면 거대한 바다와 하나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설령 도태를 만들어서 백회로 출신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정된 몸이기에 한정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건 뻔한 일일세.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주라고는 할 수 없지.
사실 알고 보면 천지에 충만한 게 신일세.
내 몸이나 자네 몸이나 비록 형상은 다를지라도 신은 하나일세.
형상의 틀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거대한 우주의 신, 그 자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지.
그런 신과 하나로 통하지 못하는 건 한 마디로 기가 막혀서 그런 거야.
내 몸 안에 막힌 기의 통로만 풀어주고, 그걸 더 확대해서 외부의 신과 통하게 기를 통하게만 하면 수운선생이 체험한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그런데도 백회를 열고 출신을 한다고 하니 정말 기막힌 노릇이라고 할 수밖에‘
라고 운곡법사는 말을 한 기억이 정도의 뇌리에 떠올랐다.
“아! 현무경의 영부를 받고 그걸 제대로 간직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기를 치고 주문을 독송하는 것이 진정한 수련이요, 수도라는 말씀인가요?”“그렇지. 예를 들면 귀중한 보물을 받는 순간부터 ‘이걸 잘 보관하고 있어라’는 명을 받드는 거나 다름이 없지. 보물을 도둑맞지 않도록 잘 간수하는 걸 守心이라 하고, 그게 흠집이 안 나도록 잘 닦는 걸 修心이라고 하는 걸세. 즉 守心의 한 방편을 가리켜 修心이라고 하는 거야. 修道와 守道도 마찬가지일세. 하늘이 수운선생께 영부와 주문을 내리는 순간부터 허상이 아닌 실상의 수도와 수련이 나온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