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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세동귀

영부, 精山 2010. 7. 13. 07:07

그래서 동학은 다른 종교보다 더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보면 될 걸세.

하지만 현무경의 원리와 동학이 연계한 상태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속물들과 같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걸세.

남의 종교단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좋지 못하지만, 현재 동학을 이어받은 천도교의 시스템은 분명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일세.

우리나라 정치판이 그런 것처럼 대통령이 바뀌면 장관이나 국무위원 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급 기관장이 다른 색깔로 바뀌는데, 포덕천하, 광제창생을 표방(標榜)하는 거룩한 곳에서도 그런 행태가 벌어진다고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본래 동학의 모태인 대자연의 도수대로 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든 선거제도와 시스템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즉 바른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생각에서 비롯한 체제 때문이라고 본다네.

보국안민이라는 수운선생의 원대한 포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올바른 깨달음이 먼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운곡법사는 속이 갑갑한지 손수 주전자를 들어 잔에 붓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리가 현무경을 공부하고 매일 수련을 하는 목적도 보국안민에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네. 사랑이니, 자비니, 인이니 하는 기존의 종교적인 이념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구체적인 모양으로 드러나게 하면 보국안민이라고 할 수밖에 더 있는가?

개인의 안위나 구원,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면 개인적인 이기주의자가 되며, 반대로 국가나 안보를 우선순위로 삼다보면 집단적인 보수주의자가 되는 법일세.

개인이 없는 국가나 사회는 불가능하며, 국가나 사회가 없는 개인도 역시 불가능하지.

개인과 전체는 반드시 같이 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동학에서는 동귀일체(同歸一體), 여세동귀(與世同歸)라고 하였지.

우리식으로 말하면 십일귀체가 되겠군.

광제창생, 포덕천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지.

그건 그렇고, 다음 수덕문으로 들어가 볼까?”

 

운곡법사는 미리 준비한 수덕문을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