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기연을 문자대로 풀이한다면 ‘그런 것과, 안 그런 것’ 정도가 될 거야.
불연기연도 동학에서는 귀한 말씀으로 전해오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세상에는 이미 밝혀진 사실 즉 其然과 아직 모르는 사실인 不然으로 나누어진다고 하면서 기연이건, 불연이건 둘 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치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고 한탄하는 게 주류를 이루고 있네.
胡無知胡無知 어찌하여 앎이 없는고? 하는 탄식 소리가 지금 우리의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군.
즉 왜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여서 익히 알고 있는 其然에만 관심이 있고, 不然에는 관심이 없는가?
사물의 이치에 깨달음이 없는가, 왜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기연불연의 내용일세. 이 글의 핵심을 꼽으라고 한다면 ‘數之而明之 記之而鑑之 四時之有序兮 胡爲然胡爲然’이라고 나는 보는데, 만물에는 도수가 다 있어서 그것을 세어서 밝히고 기록으로 밝혀서 거울처럼 밝게 하니 바로 사계절이 있게 된 것을 어찌하여 세상에서는 모르느냐고 수운선생은 한탄을 하셨네.
이처럼 수운선생께서 동학을 통하여 일러주고자 한 것은, 선천의 종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을 믿어라’는 식으로 신앙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먼저 천지의 도수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과 정성을 다 하라고 가르쳤지.
이것이 바로 성경신일세.
막연하게 그냥 '정성을 다 하여 하느님을 공경하고 믿어라'는 게 아니라, 천지의 도수를 깨닫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공경을 하며 믿음을 지니라는 얘기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는 말일세.
이런 것은 수운 선생께서 직접 지으신 여러 시구(詩句)들을 통해서 그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네.
수운 선생은 몇 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건 전부 이런 도수를 암시하는 것들이었지.
그런데도 지금 천도교에서 해설한 내용들을 보면 문자풀이에 지나지 않거든.
그건 천지도수를 몰라서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우선 절구라는 시를 한 번 감상해볼까?”
絶句 (절구)
하청봉명숙능지 河淸鳳鳴孰能知
운자하방오부지 運自何方吾不知
평생수명천년운 平生受命千年運
성덕가승백세업 聖德家承百世業
용담수류사해원 龍潭水流四海源
구악춘회일세화 龜岳春回一世花 :
운곡법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절구’를 조용히 읇조렸다.
노인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청아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