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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수행에 대해 여쭙니다.

영부, 精山 2010. 8. 12. 04:53

수행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修行은 선천에서 쓰던 용어입니다.

마음과 몸을 청결히 한다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표현일 겁니다.

그것은 곧 마음과 몸에 더러운 것이 있다는 걸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修心이라는 용어나 修道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선천에서는 일단 사람을 더러운 존재로 규정했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의 타락론입니다.

에덴에서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타락을 하였고, 그 더러운 몸과 마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교리가 그것이지요.

 

그러나 후천의 도법은 다릅니다.

동학을 창도하신 수운 선생께서는 守心正氣를 내세웠습니다.

守心, 守道라는 것은 더럽고, 깨끗함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도 않습니다.

애초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守心이나 守道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천성이나 신성을 그대로 보전한다는 말입니다.

인위적인 수련이나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래 있는 걸 다시 찾아 세우는데, 그걸 깨달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현무경에서는 이목구비를 성리대전 80권이라고 하였지요.

이목구비는 우리의 몸을 가리키고, 그 속에는 본래 사물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성리가 80권으로 大全한다는 걸 일러주는 문구입니다.

현무경의 영부는 성리가 파동으로 나타나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지요.

인위적인 수련이 아니라, 천부적인 성리가 내 맘과 허공에서 파동치는 현상을 문양으로 나타낸 겁니다.

 

사실 현무경을 제대로 깨치면 다른 수련이나 수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촛불님께서 굳이 수련을 하시려고 한다기에 주문을 동반한 수련방편을 말씀드렸던 겁니다.

 

그렇다면 守道나 守心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각인하는 일입니다.

天主나 하나님이나 같은 의미라고 보는데, 천주교에서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누가 사용하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문제는 자신이 진실로 하나님을 모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가 하는 점입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세무민하는 종교교주 중에도 있고, 보통 사람들 중에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한다고 해서 다 틀린 것도 아니고, 다 맞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을 지닌다고 하는 자체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증거입니다.

즉 생명을 받는 순간부터 侍天主가 되는 겁니다.

 

시천주!

이걸 제대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걸 깨닫는 것과, 그렇지 못하고 그냥 자신의 말로 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 수 밖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입에서는 무수한 말이 오고 가지만, 정녕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간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만약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증오하며 욕설을 뱉을 수 있나요?

비록 악한 감정이 솟았을 지라도 '아! 내 속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화를 낼 필요가 있나?'하고 생각을 달리해 보세요.

사람이 화를 내고,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무언가 자신의 욕구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니 그 분에게 모든 걸 맡기기만 하면 다 해결 된다는 믿음을 가져 보세요.

다만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순수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이처럼 시천주의 의미만 제대로 알고 행하기만 한다면 몸과 맘에 걸쳐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시그릿'의 핵심이지요.

몸을 통한 강력한 기수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위력적인 것은 바로 이런 마음 자세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수록 '하나님이라면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하는 생각을 품어보세요.

자기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한다고 믿으면 정말로 힘든 세월을 보내게 마련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온전하게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머리에는 진실을 생각하고, 가슴에는 거룩한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삿된 생각이 머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결코 전지한 상태가 될 수 없으며, 그런 가슴으로 행동하면 전능한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그 형상이 구체적으로 내 머리와 가슴, 팔 다리에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는 죽고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는 말이지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특정한 수련이나 수행도 중요하겠지만, 그 모든 것 이전에 이런 깨달음과 마음의 바탕을 지니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저절로 자신의 길이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육이지요.

 

건의 밝은 기운이니, 음의 탁한 기운이니 하는 말들도 일리는 있겠으나, 위에서 말한대로 생활을 해보세요.

그러면 얼마나 간편하고 강력한 효력이 있는 가를 알게 될 겁니다.

지식이나 학문 같은 것도 매우 효율적으로 이해가 되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말을 한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행동을 한다. 내 입은 진실을 외치고 있으며, 내 행동은 사랑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