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팔절과 후팔절은 일종의 계율과 같다.
선천의 종교에서는 무수한 율법과 계명이 있지만, 후천의 동학은 그런 게 별로 없다.
본래 율법이나 계율은 몽학선생과 같아서 아직 유치한 소년, 소녀들의 의식을 계도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그런 것들은 오히려 커다란 지장을 줄 우려가 크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지혜와 능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절팔절과 후팔절은 성인들의 수준에 올라서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8절이라고 하여 여덟 개의 항목을 만든 이유는 8이라는 숫자가 卦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괘는 사물의 형상을 천지인 3계의 입장으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8절은 3계의 형상을 언행으로 드러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前八節 (전팔절)
1. 不知明之所在 遠不求而修我 : 밝음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옛 말에 이르기를 근취저신(近取諸身)하고 원취저물(遠取諸物)하라고 하였다.
사실 도는 ‘나’ 자체다. 도는 생명이요, 생명은 나를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모르면 천하를 얻어도 소용이 없다.
동학이나 현무경을 아무리 잘 안다고 하여도 만일 자기 자신을 모르면 허상에 빠진 것이다.
2. 不知德之所在 料吾身之化生 : 덕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몸의 화해난 것을 헤아리라.
덕은 도의 발현(發現)이다.
앞에서 明을 모르거든 자신을 닦으라고 하였는데, 그 다음으로 덕을 언급하고 있다.
도는 생명이요, 음양의 합일이니, 이는 곧 明이다.
음양이 화합하여 내 몸이 나왔으니, 이는 바로 도가 자신을 드러낸 것이므로 덕이라 한다. 생명은 도요, 그것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면 덕이다.
그래서 도는 조화(造化)요, 덕은 교화(敎化)라고 하였다.
세상에서 덕을 쌓고 싶다면 마땅히 자신의 몸이 어떻게 화한 것인지 먼저 궁구할 일이다.
3. 不知命之所在 顧吾心之明明 : 명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의 밝고 밝음을 돌아보라.
여기서의 命은 천명(天命)을 가리킨다.
천명은 절대적인 것이다.
하늘이 절대자라고 하는 이유는 천명을 발하기 때문이다.
천명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런 천명을 찾을 수 없다면, 반드시 자신의 마음이 어두운지, 밝은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이 어두운 것은 곧 내 마음이 어둡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왜 나에게는 깨달음이 없을까?’라는 탄식을 하지만, 그것은 그 마음이 어둡기 때문이다.
마음의 어둠을 밝히려면, 음양의 법칙에 明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