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무극한(無極) 이 내 도(道)는 내 아니 가르쳐도
운수(運數)있는 그 사람은 차차차차 받아다가
차차차차 가르치니 내없어도 당행(當行)일세
행장(行裝)을 차려 내어 수천리(數千理)를 경영(經營)하니
수도(修道)하는 사람마다 성지우성(誠之又誠) 하지마는
모우미성(毛羽未成) 너희들을 어찌하고 가잔 말고
잊을 도리 전혀 없어 만단효유(萬端曉諭) 하지마는
차마 못 한 이내회포(懷抱) 역지사지(易地思之) 하였어라
그러나 할 길 없어 일조분리(一朝分離) 되었더라
* 당행 : 마땅히 행해 나아간다
* 성지우성 : 정성을 드리고 또 드림
* 모우미성 : 털과 날개가 나오지 않았으니 어린애를 가리킴
* 만단효유 : 여러 가지로 깨닫도록 일러 줌
* 역지사지 :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함
* 일조분리 : 하루 아침에 이별함
무극대도를 깨우쳐 사람들을 가르치니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 모함이나 비방, 관청의 의심도 많아졌다.
이에 수운선생은 아직 털과 날개도 제대로 나지 않은 어린 제자들을 남겨 두고 멀리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제자들이 역지사지하여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하루아침에 이별하는 슬픔을 토로(吐露)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수운 선생은 왜 자신의 깨달음을 가리켜 ‘무극대도’라고 했을까?
그것도 ‘만고 없는 무극대도’라고 하였으니 수운 선생 전에는 무극이 없었다는 말일까?
그건 아니다.
무극이나 태극, 황극에 대한 가르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표현을 쓰고 있는데, 사람들은 말하기를 ‘무극대도는 끝이 없는 큰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풀이를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공자나 석가, 예수 등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당연히 끝이 없는 대도라고 하지 어느 누가 ‘끝이 보이는 적은 도’라고 하겠는가?
수운선생께서 무극대도라고 한 것은, 十의 등장을 가리킨다.
선천의 종교나 가르침은 모두 1에서 9에 달하는 色을 보여주는 것이었지, 결코 그 본체인 十무극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걸 한 마디로 나타낸 것이 천부경의 ‘一始無始一’이며 다른 말로 하면 ‘小頭無足’이다.
역학으로 말하자면 1감수에서 9리화까지만 나타났다는 말이 된다.
十은 얼핏 보면 두 개의 선이 하나로 합한 상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운선생의 十은 셋이 하나로 모인 것이다.
셋은 다름 아닌 ‘유도, 불도, 선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수박을 가를 적에 一析三極이라고 한 것처럼, 세 개의 축(천축, 지축, 인축)이 한데 모인 내면의 十을 가리킨다.
수박을 두 번 갈라서 생기는 十은 표면의 상하로 나타나지만, 세 번 갈라서 생기는 十은 수박의 내부에 생긴다.
이것이 진정한 十이요, 무극대도다. 이것을 천부경에서는 ‘大三合六生七八九’라고 했다.
그것은 열매 속에 생긴 씨앗이다.
선천에서는 열매가 익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노력을 하고 정성을 드려도 결코 그 씨앗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때가 되매 마침내 동방에서 동학으로 수운선생에 의해서 그 실체가 나타났으니 그것을 가리켜 十무극대도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