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가도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안심가의 마지막 문구는 수운선생께서 우리나라의 운세를 걱정하면서, 호시탐탐 침략할 틈새를 노리는 일본을 질타(叱咤)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만고충신 김덕령을 시기하고 무고하여 죽인 것처럼 후천 5만 년을 개벽하려는 수운 선생 자신을 모함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다는 걸 탄식하고 있다.
김덕령은 후천의 서방 金으로 德齡(덕을 쌓은 세월)한 인물의 상징이다.
그러나 임진란 당시에도 오성과 한음 같은 충신이 있어서 나를 보전했던 것처럼, 수운 선생도 한울님이 내려주신 옥새를 보전하겠다는 굳은 맹서를 다짐한다.
이미 수운 선생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을 걸 미리 내다보시고 ‘개 같은 일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거룩한 내 집 부녀(婦女) 근심 말고 안심(安心)하소 이 가사(歌詞) 외워 내서 춘삼월(春三月) 호시절(好時節)에 태평가(太平歌) 불러 보세’라는 말로 안심가를 마감했다.
수운 선생은 일본을 지극히 증오했던 것 같다.
‘개 같은 일본’이란 기록을 많이 남겼으니 그런 인상을 짙게 풍긴다.
동학은 외세, 특히 일본의 침략에서 조선을 지키려는 충정을 동학혁명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을 정도다.
아마 그런 반일 감정은 수운 선생의 ‘개 같은 일본’이란 자극적인 표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본래 안식가는 ‘현숙한 내 집 부녀’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여성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후천의 곤도(坤道)를 가리켰다.
안심가에서는 특히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을 표출하였는데, 그것은 단순하게 일본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후천의 곤도는 양이 아니라, 음을 위주로 하는 법인데, 그걸 가로 막고 있는 상징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日本은 ‘태양의 근본’이므로 선천 물질문명의 근본을 의미한다.
당연히 양은 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건만, 마지막까지 야욕을 버리지 못함을 질타한 것이다.
하지만 개벽주로 오신 증산께서는 ‘일본에게 조선을 맡겨야 한다’ 면서 ‘일본은 머슴’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수운과 증산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두 분의 역할이나 사명이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