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단간목과 전자방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단간목(段干木)
전국 때 위나라의 문신인데 젊었을 때에 몹시 빈천하였지만 자하를 스승으로 섬겨 공부를 하였다. 위나라에는 당시 자하, 전자방, 이극(李克), 적황(翟璜), 오기(吳起) 등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 모두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단간목은 오직 도를 지켜 벼슬을 하지 않았다. 위문후(魏文侯)는 단간목의 훌륭함을 알고 높은 벼슬을 주기 위하여 그 집을 찾아갔다. 그는 임금이 왔는데도 면회할 생각은 않고 담을 뛰어 넘어 도망 쳤다. 그의 성격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후부터 위문후는 그의 집 앞을 지날 때에는 수레 위에서도 언제나 그 집을 향하여 몸으로써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귀빈으로 대우하였다고 한다.
또 어떤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씌어 있다. 언젠가 위문후가 단간목의 집 앞을 지날 때에 역시 수레위에서 몸으로써 경의를 표하니 그 부하가 말하기를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럽니까?」하고 까닭을 물었다. 문후는 「이 마을에는 단간목의 집이 있지 않느냐. 단간목은 어진 사람인데 내가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겠느냐? 또 내가 들으니 단간목은 자기의 덕과, 과인의 권세를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으련다고 하니 내가 어떻게 교만을 부릴 수가 있겠느냐? 단간목은 덕에 빛나는 사람이라고 하면 과인은 지위에 빛나고 또 단간목은 의에 부한 사람이라고 하면 과인은 재물에 부하다고나 할 수 있느니라」, 「그러면 임금께서는 왜 단간목을 정승에 임명하지 않습니까?」하였으나, 벼슬을 받지 않으려는 단간목에 대하여 위문후도 할 수 없이 다만 백만의 녹을 보냈다. 이 소문을 들은 위나라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고 한다. 얼마 후 진나라가 위나라를 치려고 할 때에 사마당(司馬唐)이라는 사람이 진나라 임금에게 전하기를「단간목은 어진 사람으로 위나라가 그를 무척 존경하고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인데 이런 나라를 치면 천하의 인심을 잃을까 두렵습니다」하여 그 계획을 중지케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인물을 수운선생께서 난범난도를 하였다고 한 것은, 전자방이나 단간목이 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으면서도 유교의 연원도통(淵源道統) 보다는 노장학파로 흘러 간 것을 가리킨 게 아니었을까? 유교의 정신으로 말하면 공자와 같이 철환천하(轍還天下)하여 여러 나라의 임금을 만나 보면서라도 치국평천하의 대도를 펴보겠다는 것이 당연한데도 단간목은 위문후와 같은 훌륭한 임금이 만나려고 방문한 것을 물리치고 담을 넘어 도망한 것은 군신(君臣)의 도리로 보나 또는 치국평천하의 적극적인 이념으로 보아 유도의 정신에 어긋날 뿐 아니라 소극적인 은둔사상에 도취한 것은 도교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니 난법난도라고 한 게 아닐까? 맹자는 단간목이 담을 넘어 몸을 피한 것은 너무 심한 행동으로 임금이 지성으로 요구해 오면 만나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여 단간목의 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전자방은 위문후가 ‘선생의 스승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동곽순자(東郭順子)’라고 했는데, 그는 본래 공자의 제자인 자하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모두 유교를 떠나 노장학(老莊學)으로 갔다고 할수 있는 동시에 이것을 난법난도로 본 것 같다. |
이 글은 천도교의 시각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