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처(遠處)에 일이 있어 가게 되면 내가 이(利)코
아니 가면 해(害)가 되어 불일발정(不日發程) 하다가서
중로(中路)에 생각하니 길은 점점(漸漸) 멀어지고
집은 종종 생각나서 금(禁)치 못한 만단의아(萬端疑訝)
배회노상(徘徊路上) 생각하니 정녕(丁寧)히 알작시면
이 걸음을 가지마는 어떨런고 어떨런고
도로회정(回程) 하였더니 저사람 용렬(庸劣)하고
글 네 자 밝혀내어 만고사적(萬古事蹟) 소연(昭然)하다
아홉 길 조산(造山)할 때 그 마음 오작할까
당초(當初)에 먹은 생각 과불급(過不及) 될까 해서
먹고 먹고 다시 먹고 오인육인(五仞六仞) 모을 때는
보고 나니 자미되고 하고나니 성공(成功)이라
어서 하자 바삐 하자 그러그러 다 해 갈 때
이번이나 저번이나 차차차차 풀린 마음
조조해서 자주 보고 지질해서 그쳤더니
다른 날 다시 보니 한 소쿠리 더했으면
여한(餘恨)없이 이룰 공(功)을 어찌 이리 불급(不及)한고
이런 일을 본다 해도 운수는 길어지고
조가튼 잠시로다 생각고 생각 하소
* 불일발정(不日發程) : 날짜를 잡지 않고 길을 떠남, 즉 갑자기 길을 떠남.
* 만단의아(萬端疑訝) : 갖가지 의심스러운 생각
* 배회노상(徘徊路上) : 길 위에서 오락가락함
* 만고사적(萬古事蹟) : 오랜 예전 일의 자취
* 소연(昭然) : 이치에 밝음
* 조산(造山) : 산을 쌓음
* 과불급(過不及) : 넘치고 모자람
* 오인육인(五仞六仞) : 다섯 길, 여섯 길 - 길이를 재는 단위
* 조조(阻阻)해서 : 매우 초조해서
* 지질(遲質)해서 : 매우 더딘 것 같아서
* 조가튼 : ‘조갓‘은 조급한 심정, 초조한 생각
(풀이)
중간에서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포기 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는 말씀이다. 길을 가다보면 여러 가지 의심도 들고 집 생각이 간절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글 넉자를 생각해서 만고사적을 밝히라고 하였다. 글 넉 자가 무엇인지는 정설이 없다. 다만 ‘守心正氣’나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하고 있는데, 내 견해로는 ‘4상’을 가리킨 듯하다. 본래 4라는 숫자는 음양이 천지로 벌어진 상태를 가리킨 것으로, 여기에서 만고사적이 다 비롯하기 때문이다.
‘아홉 길 조산(造山)한다’고 한 것은 9변을 가리킨 것이며, ‘오인육인(五仞六仞) 모을 때’는 낙서의 중심에 5가 들어가고, 용담의 중심에 6이 들어간다는 걸 가리킨다. 모든 일에는 다 정해진 기회가 있는 법이므로, 누구든 기회를 잡았을 적에는 초조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며, 끝까지 일심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