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의 黃은 ‘누를 황’이다. 그것은 ‘누르다’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누르다’는 것은 모든 걸 ‘평정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평평한 가운데 뭔가 특별나게 위로 솟아나지 못하게 한다. 黃이란 글자 속에 있는 것처럼, 모든 사물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빛을 골고루 통하게 하는 밭의 역할을 가리킨다.
황색은 모든 색을 평평하게 한다. 이처럼 모든 걸 평평하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황색은 매일 보거나, 오래 보아도 그다지 질리지 않는다. 방의 장판을 만약 붉은 색으로 한다면 집안의 분위기는 안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며, 흰 색으로 한다면 쌀쌀한 정서가 흐를 것이다.
대변의 색깔이 누런 것은, 과학적으로는 쓸개의 담즙이 소화작용에 관여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장간순환(腸肝循環 : 피가 간에서 나와 장과 혈액을 거쳐 다시 간으로 돌아오는 사이클)을 거치면서 배설되는 음식물의 찌꺼기를 황금색으로 만든 것이 대변이다. 음식물을 消化(소화)한다는 것은 곧, 섭취한 각종 음식물을 공평하게 만들었다는 증거다.
만약 대변 색이 푸르거나 초록색이면 속이 냉한 것이요, 붉은 색이라면 열이 많은 것이며, 습기가 많으면 설사로 나타난다. 예부터 황금 변을 건강의 청신호라고 하는데, 그것은 황금색이야말로 모든 색을 다 中和(중화)시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누런색이라고 하여도 황금처럼 빛을 내는 것이 좋다. 빛을 낸다 함은 곧 생기가 왕성하다는 신호다. 그것은 다른 색들도 마찬가지여서 푸른색에 빛이 없이 蒼白(창백)한 상태라면 이미 간에 상당한 손실이 있는 경우이며, 붉은색이라도 알콜중독자는 불그죽죽한 얼굴색을 띠게 마련이다. 폐에 이상이 있으면 윤기가 없는 흰색을 띠게 마련이다.
여름의 火와 가을의 金 사이의 오행을 土라고 한다. 봄의 오행을 木이라고 하는데, 木은 본래 十이 八方으로 벌어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十은 음과 양의 조화를 가리키는데, 남녀가 음양의 교접을 하는 것을 十이라고 부른다. 丨은 남성이요, 一은 여성이며, 八은 자녀(아들, 딸)를 가리킨다. 혹은 八 대신에 人을 집어넣어 十과 人을 합한 모양을 木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 역시 같은 의미다.
여름은 火라고 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5방으로 화염이 방사되고 있는 형상이다. 이에 비해서 늦여름을 가리키는 土는 十과 一을 합한 모양인데, 十은 무극이요, 一은 태극이다. 즉 무극과 태극을 합하는 곳이 바로 흙이라는 뜻이다.
무극은 무형의 극이요, 태극은 유형의 극이다. 무형과 유형의 극을 한데 모아서 發芽(발아)시키는 곳이 흙이다. 그리고, 그 색을 가리켜 황색이라고 한 것이다. 흙에는 생기가 있어야 한다. 흙에 생기가 없으면 어찌 생물들이 살 수 있을까? 그러기에 흙을 ‘어머니’라고 비유한다.
十과 一이 한데 합한 문자로는 士(선비 사)도 있다. 土와 士의 차이는 밑에 一이 긴 것이 土요, 위의 一이 더 길게 하면 士다. 즉, 土는 형이하적인 면을 중시하고, 士는 형이상적인 면을 중시한다. 흙이나 선비는 다 같이 조화와 균형을 상징하지만, 흙은 물질에서의 군자요, 선비는 사람 중에서의 군자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