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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처자 환서일

영부, 精山 2011. 2. 10. 08:16

수운대신사께서 곤토을미분야도(坤土乙未分野圖)를 중궁(中宮)에다 세었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곤은 乙이요, 후천의 土는 未로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선천의 건은 甲이요, 土는 丑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수운 대신사께서 득도를 하신 건 경신년 4월 4일(1860 경신년 신사 4월)이었으나 본격적으로 포덕을 하게 된 것은 다음 해 1861 신유년 을미 6월이었다. 솔처자 환서일은 ‘처자를 거느리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다’는 뜻인데, 이것은 자미회(子未會)를 의미한다.

환서(還棲)의 ‘棲(깃들일 서, 보금자리 서)’는 手(扌)와 妻(아내 처)가 합한 글자다. 妻는 女, 屮, 又가 합한 글자인데, ‘여자가 손으로 머리에 비녀를 꽂은 형상’이다. 여자가 머리를 틀어 올리면 시집 간 것을 가리키므로 ‘아내’라고 하였다. 즉 ‘솔처자환서’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보금자리로 간다는 뜻이니, 이는 곧 고단한 선천물질문명을 벗어나 후천의 안식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곳이 바로 곤토을미다. 선천에서는 ‘甲’이 ‘丑’ 분야를 열어 인월로 세수를 삼고 ‘깝죽(甲丑)’거렸다. 후천은 오미에서 시작하지만, 본격적으로 여성이 머리를 틀어 올리는 때는 乙未會라는 것을 가리킨다.

수운 대신사께서는 후천 용담의 머리를 여신 분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담도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용담도수는 54인데, 그것이 무극수 十을 드러내려면 540일을 지켜야 한다. 솔처자 환서일을 1859년 기미 乙亥 10월로 삼았던 때로부터 본격적인 포덕을 시작하는 신유 6월 을미월까지는 540일이다.

기미년 을해10월에 솔처자를 하게 된 이유는, 후천의 중심은 선천의 戊5土에서 己十土가 되어야 하고, 가장 밝은 辰태세에서 가장 어두운 亥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면 자녀인 子를 未로 인도해야 한다. 그곳에는 이미 2곤모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물질문명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여 오매불망하던 처자가 함께하게 된 셈이니 ‘솔처자’가 아닌가?

 

‘승기대운도수절(乘其大運道受節)을 경신사월오일수(庚申四月五日數)로 백호태을천강(白虎太乙天罡)삼태(三台) 삼팔절(三八節)을 정위(定位)할 제 이팔절(二八節)에 선치심법(先治心法) 명명(明明)하게 유전(遺傳)하고 신유육월(辛酉六月)일렀으니 금계반월(金鷄半月) 알았던가’라고 한 것은 또 무슨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