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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辛

영부, 精山 2011. 2. 24. 07:27

庚과 辛은 서방의 양과 음을 가리킨다. 서방은 태양이 지는 곳이므로 그 성질이 차가운 金에 해당한다. 봄에 솟는 태양의 기운도 아니요, 여름의 강렬한 기운도 아니고, 차가운 서리와 같은 가을은 모든 걸 단단하게 모아놓은 쇠와 같다. 庚은 본래 만물이 열매를 맺는 모양을 본 뜬 글자였다. 앞서 庚은 ‘方夫貫日‘이라고 한 바 있는 것처럼, 양의 하늘이 끝나고 음의 하늘이 시작하는 후천의 개벽된 하늘을 가리킨다.

 

辛은 예전에 죄인의 얼굴에 글을 새겨 넣던 칼을 본 뜬 글자다. 그것은 매서운 징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여 ’매울 신, 허물 신‘의 뜻으로 사용한다. 죄를 정하고 다스린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없애고 필요한 것만 보전한다는 의미이니, 그것은 곧 秋收(추수)나 審判(심판)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는 辛이 十을 立한다고도 볼 수 있다.

 

十은 온전함을 상징하는 수인데, 가을의 열매는 생물이 온전한 결과다. 가을은 열매가 나타나는 시기다. 열매는 實(실)이라고 쓰는데 집(宀)안에 재물(貝)을 꿰어(毌 :꿰뚫을 관)서 쌓은 것과 같다고 한데서 생긴 글자다. 열매는 본래 생명을 온전하게 보전한다. 온전한 것은 十이다. 따라서 十을 立하는 辛을 가을의 金으로 본 건 당연하다. 그런데 왜 그것을 ’매울 신‘이라고 했을까?

 

열매는 매운 것일까? 매운 열매는 고추나 후추 같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열매는 삼라만상이 그런 것처럼 매우 다양한 나름대로의 맛을 지닌다. 그런데도 굳이 매운 것을 가을과 열매에 연결시킨 것은, 가을의 氣象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실 가을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계절의 오행과 색, 맛, 냄새 등도 다 기상을 나타낸 것이다. 가을의 기상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서릿발과 같다고 한다.

 

서리는 차갑다. 사람으로 치면 냉정하기가 그지없다. 봄의 온화함이나 여름의 정열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열매와 쭉정이를 가려내야 하는 게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가려내야 하는데, 인정이나 사정에 얽매이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가을의 기운을 특히 義(의)라고 하였다. 혁명을 할 적에는 반드시 正義(정의)를 앞세우는 것은 이런 데에 기인한다. 그래서 색깔도 白色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는데, 이런 맛을 가리켜 ’매운 맛‘이라고 한다.

 

음식을 먹을 적에도 맨 마지막으로 고추로 입가심을 하면 매우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이치다. 만약 군더더기 살을 빼고 싶다면 매운 맛을 많이 먹으면 좋다. ’매운 맛‘이라고 한 것도 ’밭에서 김을 매다‘는 것과 맥을 갈이 한다. 김을 맨다 함은, 잡초를 제거하며 공기를 잘 통하게 하기 위함이니, 이것이 바로 매운 맛이다.

 

사실 이런 것만 얘기한다고 해도 방대한 분량의 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천간의 한자에 대한 것을 얘기하는 중이므로 그런 것은 다른 기회에 언급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