戌은 ‘개 술’이라고 하는데 戍(지킬 수)와 매우 흡사하여 혼동하기 십상이다. 戍는 衛戍令(위수령 : 변란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한 명령)이라고 할 적에 주로 사용한다. 戍나 戌이나 다 같이 戈(창 과)를 부수로 하면서 도끼(戉 도끼 월)의 모양을 본뜬 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도끼로 필요 없는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戌이며 개다.
개의 생김새를 보면 짐승 중에서 가장 날렵한 몸매를 자랑한다. 그것은 그만큼 개가 金의 성질이 강하다는 말이다. 개고기는 지방질이 비교적 적은 편인데, 그것은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금의 속성 때문이다. 실제로 개고기는 금기가 강하기 때문에 삼복에 개가 수난을 당하기도 하며, 폐질환에 좋은 약효가 있다고 알려졌다.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이유는, 뜨거운 여름날에는 火克金(화극금)의 원리에 따라 금기가 많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고기로 금기를 보충하고자 한 조상들의 지혜에서 나왔다. 戌은 오행으로 土라고 하는데, 가을과 겨울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2지지의 마지막은 亥(돼지 해)다. 亥는 돼지의 머리와 몸뚱이, 네 다리를 본뜬 글자다. 돼지는 먹성이 좋아서 아무 것이건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그것은 마치 창고에 재물을 가득 쌓아둔 부자와 같다고 하여 재복(財福)의 상징으로 여긴다. 음식물이나 재물은 모두 물에서 비롯하는 법이므로 亥는 오행으로 水라 한다.
子는 陽水요, 亥는 陰水로 본다. 刻(새길 각)이라는 글자를 하필이면 亥를 칼(刂)로 새긴다고 한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다. 亥는 12지지 중에서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戌과 더불어 가장 어두운 곳에 처한 짐승이라고 하여 천시한 것이 그간의 풍습이다. 그토록 낮은 곳에 있을 적에 남모르게 칼을 갈아야 한다. 산에 오를 적에는 돼지고기나 비계를 준비하는 게 지혜로운 처사라고 할 수 있으니, 뱀이 아무리 돼지를 물어도 돼지는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뱀의 천적은 돼지다.
亥는 현무경에 ‘心靈神臺’라고 하였는데, 재물을 어둡게 쓰면 천한 돼지가 되나, 午心火馬가 되면 재물은 덕을 베푸는 거룩한 심령신대의 바탕이 된다. 앞으로는 천도를 깨달은 자가 재복도 함께 누리는 세상이 온다.
이상, 10간과 12지지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마쳤다. 간지는 시공의 법칙을 가리키는 암호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상식으로 과연 시공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 精進(정진)하자.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살고, 머무는 자는 죽는다. 그러나 급할 건 없다.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때로는 막걸리를 나누면서 여유롭게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