質問(질문)
복희도와 문왕도의 괘상의 변화를 묻는 공개질문을 며칠 전에 인터넷에 올렸다. 그랬더니 두 사람이 답을 하였다. 그런데 그 답변이 可觀(가관)이다. 소금장사라는 사람의 답변을 보면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기 위하여 만든 이설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호흡을 친히 주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을 섬기시길 촉구합니다’라고 하였으며, 또 한 사람은 불교신자였는데 ‘변화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불멸의 그 무엇을 찾으세요. 언제나 변화하는 것에 집착하면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라고 하였다.
사실 내가 그런 공개질문을 인터넷에 띄운 것은 그걸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다. 책으로 출간하려고 여러 가지를 정리하다 보니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기에 혹시 누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이 생겨서 올렸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너무나 기대 이하였다.
8괘와 9궁에 관한 상식은 그간 동양의 모든 문화의 바탕을 이루면서 현재도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걸 모르면 가만히나 있을 일이지, 자신이 믿는 신을 믿어야 한다고 답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무지가 盲信(맹신)과 蠻勇(만용)을 부른 셈이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이야 불변의 철칙이지만, 불변하는 것은 반드시 변하는 것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서 한 답변일까? 대꾸할 가치도 없는 데에 내가 신경을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씁쓸한 맛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가 어리기 때문이리라.
質問(질문)의 質은 ‘바탕 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질문’이라고 하는 것은 ‘바탕을 물어보다’는 말이 된다. 斤(도끼 근)이 두 개나 들어가 있으며 그 밑에 貝(조개 패)가 있는 게 質이다. 貝는 귀중한 재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잘게 부수고 또 부수는 도끼가 붙었으니 이는 곧 귀중한 것을 끝까지 추적해서 근본 바탕을 알아낸다는 뜻이다.
아무 것이나 묻는다고 하여 질문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풀기 위하여 묻는 것은 참다운 질문이라고 할 수 없다. 대부분 모르는 것을 물으면 ‘질문’이라고 인정하는 게 현실적인 趨勢(추세)이지만, 본래 질문은 만물의 근원적인 바탕을 묻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생일을 묻는다든가, 좋아하는 기호식품을 묻는 일 등은 감히 질문이라고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