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늪지대는 낚시꾼들로 인해 훼손되었다. 물가 버드나무 아래 쓰레기와 악취가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져 잘 신경 쓰지 않는 이 광경이, 1996년 서울에서 건넌들 마을로 귀농한 서윤석씨(53)에겐 그리 안타까울 수 없었다. 온갖 수생생물들이 사는 이 천혜의 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그러다 2003년 어느 날 어리연꽃이 핀 것이다. 신기한 마음에 이곳저곳 소문내다가 어느 날 마을을 방문한 화천군수에게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줄 테니 마을에 연 사업을 한번 시도해보라”라는 제안을 받았다. 서씨는 그때부터 전국 연 시장을 조사하고 온갖 서적을 구입해 연 공부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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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석 제공 건넌들 마을 ‘연 작목반’ 회원들이 연밭에서 채취한 연잎을 썰고 덖어 차를 만들고 있다. |
이미 전국엔 연 바람이 불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 여기저기에서 연을 심고 관광상품화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대개 논과 방둑에 심어놓고 ‘돈 들인 티 나게’ 시설 관리를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살다 온 내 눈엔 다 인공적으로 보이더라.” 서씨는 ‘자연스러움’을 차별화 전략으로 정했다. 하천 바닥 높낮이와 물가 버드나무만 좀 고를 뿐 나머지는 다 자연에 맡겼다. 자생식물들에 손을 대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종자를 얻어온 연만 드문드문 옮겨놓았다. 전략은 성공했다. 현재 10만㎡ 연 단지에선 연 300여 종과 함께 수생식물 64종이 함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우포늪 가시연도 이곳에서 피고지고, 멸종 위기종인 순채, 토종 야생 벼인 줄풀도 지천에 깔렸다. 식물만큼 동물종도 다양해져, 연 밭 사이 사람이 한 발자국 밟을 때마다 놀란 곤충과 작은 동물들이 푸드덕 풀숲을 헤친다.
25일 동안 연과자 1400만원어치 팔아
정성스레 꾸민 공간은 곧 마을 안에서 기업을 꾸릴 만한 사업 아이템이 됐다. 서씨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2008년 꽃빛향 영농조합을 출범시켰다. 연꽃 밭과 함께 옆 마을에 조성한 야생화 동산을 묶어 꽃 추출물로 오일·비누 등을 만드는 ‘향’ 사업도 도입했다. 근처 사금지를 연계해 ‘빛’과 관련된 상품도 구상 중이다. 연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만 해도 차·아이스크림·과자 등 30여 종에 달했다. 지자체 축제에 들고 나가 연과자만 25일 동안 1400만원치를 팔았다.
꽃빛향 사업은 이미 승인받아 준비 중인 환경부 수생생태공원 마을 사업이 개장하는 내후년부터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상품을 팔고 관광객을 모아 수익을 올리기도 하겠지만 그게 꽃빛향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서씨는 “순수 농업 외에도 일거리가 있어서 자손들이 돌아오는 고향을 만들고, 또 무엇보다 생태계가 잘 보존된 습지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널리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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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백승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