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 2
田은 씨앗을 심고 키우며 열매를 수확하는 곳이다. 씨앗을 田字에서 찾는다면 중심의 한 점이다. 그곳은 두 개의 선이 교차한 곳이다. 이 두 개의 선을 가리켜 우리는 음양이라고 부른다. 수직선인丨과 수평선인 一을 합한 셈인데, 어느 곳을 음이라 하고, 어느 것을 양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보는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벌어진 형태로 따진다면 수평선은 안정된 상태요, 수직선은 뭔가 힘차게 우뚝 선 형태다. 안정된 것은 음이요, 힘찬 것은 양이다. 따라서 벌어진 형태로만 본다면 수평선 一이 음이요, 수직선 丨이 양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정을 살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수평선은 높고 낮음이 없는 조화와 평등을 상징하고, 그것은 곧 안정을 가리키는 음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으로 일방적인 치우침이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수평선은 동서, 좌우를 잇는 춘분과 추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춘분과 추분은 음과 양의 기세가 적당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처럼 서로 질적으로 다른 음과 양이 한데 조화를 벌인다 함은 곧 치열한 투쟁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서 수직선은 하지와 동지를 잇는 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와 동지는 음은 음끼리, 양은 양끼리 한 곳으로 치우친 상태다. 이렇게 되면 결코 활발한 생동감이나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지구의 남극과 북극에서 생물이 살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에 기인한다. 이처럼 수평선은 서로 다른 것끼리의 활발한 활동이 있고, 수직선은 굳게 경직된 상태를 가리킨다. 활발한 활동은 양의 속성이요, 고착상태는 음의 속성이다. 따라서 수평선은 양이요, 수직선은 음이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田속의 十은 두 가지 면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그 실상을 보기 힘들다. 그것이 바로 사물의 현주소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반드시 음양이 한데 교착한 제3의 한 점이 있다. 제3이라고 한 것은 양1, 음2가 합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한 점에서 펼쳐진 一과 丨이라고 본다면 그 한 점은 태초의 1이므로 3이 아니라 1이라고 해야 한다. 이를 가리켜 태극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1태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 1태극은 음과 양이라는 둘이 모여서 새로운 하나로 탄생한 셈이니, 이럴 경우는 <1 = 3> 즉, 一卽三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三眞歸一사상이다. 1태극은 3신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3신은 곧 1태극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전 세계에 떨친 것이 바로 ‘기미년 三一독립운동’이었다.
田을 음미하라. 心田에는 없는 것이 없으며, 못 할 것이 없다. 십리도 못 가서 발 병 나고 싶지 않다면, 우리의 내면에 면면히 흘러 온 아리령(亞裡嶺)을 넘고 싶다면 心田을 갈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