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과 연관된 글자에서 중요한 것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學問 을 사전에는 학문을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의심나는 것을 물어 익힘. 또는 그 일’이라고 풀이했다. 이와 발음과 뜻이 같은 것으로 學文이 있다. 學文과 學問! 이 둘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問과 文의 차이를 살피면 될 것이다. 問은 ‘물을 문’이라고 하며, 文은 ‘글월 문, 무늬 문, 채색 문’이라고 한다. 問은 門과 口를 합한 形聲문자다. 門은 양쪽 문을 닫은 상태를 본뜬 상형문자다. 물론 문을 본뜬 상형문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양쪽에 높이 태양(日)을 매단 상태로 보아도 될 것이다. 태양을 좌우에 높이 달아 놓으면 밝은 세상이 되어 거침이 없이 드나들 수 있으니, 이를 ‘문’이라고 한다. 문이라는 것은 본래 아무 곳으로 드나들지 말고 정해진 곳으로 드나들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약 문이 없다면 무질서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의식이나 생각은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 질서를 밝히는 것이 바로 日이며, 그것을 좌우로 높이 세웠으니 門이다. 그 속에 口가 들어가면 ‘질서 안에서의 口’가 된다. 門밖에 있는 口는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기운을 거두어 먹는 ‘입’이다. 입은 유형적인 물질을 먹는 대신, 무형의 말을 내놓는다. 이처럼 유, 무형이 드나드는 문이 口다. 그런 口가 門안에 있으면 ‘질서 안에서의 입’이 된다. 질서가 없는 입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 그러기 때문에 問은 ‘질서를 다지는 일을 배우거나 물을 적에’ 주로 사용한다. 만약 질서에서 벗어나면 문책(問責)을 당하며, 정답을 모를 적에는 문의(問議)한다. 그러므로 학문(學問)은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의심나는 것을 물어 익힘’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文은 ‘글월 문, 무늬 문’이라고 한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특정한 문자나 文段을 가리킨다. 본래 文은 하도와 낙서, 용담 등의 ‘무늬’에서 나왔다. 하도는 1, 3, 5, 7, 9라는 흰점(양)과 2, 4, 6, 8, 10이라는 검은 점(음) 55개가 모인 무늬이므로 1에서 10까지의 숫자의 합이다. 이것이 마방진의 시원이 되므로 결국 文은 ‘깨달음에 이루는 도구’를 의미한다. 文이라는 글자가 亠(뜻 없는 머리 두, 돼지머리 두)와 乂(벨 예, 다스릴 예, 어질 예)가 합한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무언가 깔끔하게 정리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즉 文은 모든 생각이나 사상, 의식 등을 쌓아놓는 기본적인 도구라는 말이다. 그것은, 삼라만상이 무수하게 벌어졌지만 그 기본은 단 열 개의 숫자로 나타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文 = 數다. 따라서 學文은 ‘글을 배우다’는 뜻이다.
이처럼 學文과 學問은 다른 의미가 있다. 만약 書道를 배운다면 學書라고 하며, 학문으로 익힌 재주라면 학예(學藝)라고 하며, 배움과 연관된 규칙은 학칙(學則)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