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가수 임정희는 2005년 연말 청와대에서 열린 특별 연주회를 잊을 수가 없다. 이날 공연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스러운 연주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보통 사람과 달리 네 손가락만으로 피아노를 마음껏 주무르는 이희아의 연주였다. 한 손에 두 개씩 네 손가락밖에 없는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를 딛고 건반 위에 우뚝 선 피아니스트 이희아.
그날 이후 임정희는 이희아의 연주회를 찾아다니며 우정을 쌓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2집 수록곡 가운데 '튤립'을 만들어 발표하기에 이르었다. '튤립'은 이희아의 어머니가 희아의 손을 보고 마치 튤립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한데서 착안해 만들어진 곡이다.
희아의 어머니는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간호사가 분만실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나와 보이 자 이를 본 가족들이 다 도망을 갔대요. 나는 기도했죠. '하나님이 천하 만물을 만드시고 참 보기 좋아하셨으니 내 아이도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겠지요.' 그 때 소리가 들렸어요. '생긴 모양이 다르다고 무시하지 마라.' 얼른 일어나서 아기 손을 꺼내봤더니 손가락 두 개 달린 손이 튤립으로 보였어요. 생긴 모습이야 어떻든 사랑이 있으면 자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솔직히 그녀라고 왜 아이를 포기하거나 보호시설에 맡길 생각을 안 했겠는가.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도피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포기한다고 해도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죄가 얼마나 많으면 저런 아이를 낳았겠느냐"고 수군거릴 때면 장애아를 둔 다른 엄마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래, 나라도 제대로 키워서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해야겠다 싶었다.
어렵게 아이를 키워 나름대로 성곡한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지만, 한편에선 아이를 부모 입맛에 맞게 키웠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나 괴로웠다.
"맞아요. 전 악질 엄마에요. 단언할 수 있어요.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연습하는 동안 수도 없이 매를 들었죠. 오죽하면 사람들이 '희아가 저런 엄마를 만나 고생한다.' 라고 했겠어요. 아마 아이도 이런 엄마를 견뎌내는 게 가장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피아노를 택한 아이에게 기본을 잡아주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내심을 키워줘야 했지요."
하루는 희아가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이 '꽃게 손' '귀신 손'이라고 놀렸다는 것이었다.
"저는 오히려 희아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쳤어요. 놀린다는 건 최소한 관심은 있다는 애기니까요. 그게 침묵하는 것보다 나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희아에겐 친구가 많아졌어요. 이제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요."
평생을 손가락 네 개로 살아가야 하는 그녀에게 장애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다집하듯 말한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내 자신이 희망이 되어 희망을 애기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