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의 생각은 어떤 종류의 물욕이라도 품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하여 머리에는 전혀 하고자 하는 욕심을 품어서는 안 될까? 그건 아니다. 그 답도 역시 하늘을 보면 나오는데, 사실 하늘처럼 큰 욕심쟁이도 없다. 왜냐하면 하늘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원만(圓滿)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다 있다. “아니? 하늘은 아무 것도 없는데 모든 것이 다 있다니?”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하늘에서 씨를 뿌리지 않으면 어찌 땅에서 모든 생물이 생육(生育)할 수 있을까? 하늘이 공간이 아니라면 어찌 일월성신을 비롯한 모든 물체가 터전을 잡을 수 있으며, 순환과 변화를 할 수 있을까? 만약 하늘이 텅 빈 공간이 없이 물체로 충만한 상태라면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를 할 수 있을까? 공간이 넓을수록 자유롭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각도 물욕이 적을수록 자유롭다.
어떤 일을 할 적에도 물욕을 바라고 한다면 이미 참다운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왕 욕심을 부린다면 하늘과 같은 욕심을 부려라. 하늘은 결코 어떤 형체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명예, 부귀, 영화, 사랑, 권세 등등, 불교에서도 말하기를 ‘방하착(放下着)’을 하라고 한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뜻인데, 그냥 ‘하심(下心)’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모든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니 하늘처럼 되라고 하는 셈이다. 욕심을 부리려면 하늘을 닮으라. 모든 것을 무형으로 돌려버리는 욕심! 그것을 일러 무심(無心)이라 했던가?
그렇다고 하여 하늘이 전혀 욕심이 없다는 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늘은 큰 욕심쟁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늘의 욕심은 무엇일까? 하늘의 욕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대가를 바리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낳고 키우는 데에 무슨 바람이 있을까? 물론 늙어지면 자녀에게 기대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다. 자녀의 봉양(奉養)이 있건, 없건 부모가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하느님의 심정에서 비롯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욕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하늘처럼 틀이 없고, 모든 걸 다 품으며, 자신이 가지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텅 비운 채 모든 물질이 존재하는 바탕이 된다. 하늘이 그런 것처럼 사랑은 오직 단 한 개의 지름길로 모든 걸 절대평등의 세계로 인도한다. 단 한 개의 지름길은, 진리의 말씀이다. 진리의 말씀은 빈부격차 등 인간들이 누리는 모든 차별상과는 거리가 멀다.
욕심을 가져라! 모든 걸 다 놓아버리되 단 한 가지 하늘의 욕심은 놓치지 말라. 하늘이 모든 생물을 내고 살아가게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사랑을 베풀자. 그것이 둥근 머리통을 달고 다니는 진정한 뜻이다. 하늘은 이처럼 원만하게 모든 걸 다 베푸는 사랑을 한다. 그렇다면 하늘은 무조건 베풀기만 할까? 과연 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것이 사랑일까? 그건 그렇지 않다. 하늘도 바라는 것이 있다. 부모가 무조간 자식한테 베풀기만 한다면 하늘도 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맞지만, 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마냥 베풀기만 한다면 자식이 다 커서도 베풀어야 한다. 그런 걸 가리켜 사랑이라고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건 자식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망하게 하는 짓이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베풀기만 한다면 땅과 인간을 망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