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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방각 4

영부, 精山 2012. 4. 17. 06:52

그런데 왜 우리 조상들은 천원지방을 철석 같이 믿었을까? 그것은 인체의 모형을 보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인체는 천지의 축소판인데, 머리통이 둥글고 몸통과 거기에 붙은 손과 발은 모가 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용어를 만들었다. 하긴, 몸통이 네모꼴로 생겼다고 하는 말도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몸통도 역시 둥글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으로 그릴 적에는 머리는 원형으로 몸통은 방형으로, 팔다리는 각형으로 그린다.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하늘은 본래 무형이기 때문에 원형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이다. 그런 면에서 땅이 네모졌다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이다. 그런데 왜 천원지방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유형적인 형상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무형의 상(象)을 가리킨 것이다.

땅은 본래 ‘따’라고 한다. ‘하늘 천 따지’라고 하지 ‘하늘 천 땅 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는 ’따로 떨어지다‘는 말이다. 땅은 하늘에서 따로 떨어진 물체다. 땅을 비롯한 모든 물체는 0이라는 거대한 하늘에서 따로 떨어졌다. 그것은 1, 2, 3 ... 이라는 모든 숫자가 0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것과 같다. 땅을 가리키는 地라는 글자를 보면, 土를 也(어조사 야, 잇기 야)하는 글자다. 즉 토를 이어놓은 것이 땅이라는 뜻이다. 흙이 모여 땅을 이룬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흙이 土라고 한 의미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르는 것 같다. 土는 十무극과 一태극을 합한 상태이니, 이는 곧 十을 一로 연결한 모습이다. 무극은 본래 무형인데, 그것을 유형으로 연결해 주는 매체가 土라는 말이다.

무형이 유형으로 화한다는 것은 곧 음과 양이 합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물은 절대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철칙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물에는 반드시 음양이 함께 들어 있다. 무형인 하늘에서는 본래 무형이기 때문에 아무런 차별이 없는 무등(無等)이었지만, 그것이 형상을 띤 물체로 땅에서 나타나면 상대적인 차별을 띠게 마련이다. 이것은 방(方)의 그림을 그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네모진 방에서도 무수한 지름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두 개, 즉 한 쌍의 종류를 지닌다. 앞에서 원의 지름은 오직 한 종류 밖에 없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방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원의 지름의 종류가 하나라고 한 것은 원이 절대적인 사랑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임에 비해, 방의 지름의 종류가 두 개라고 한 것은 방에서는 상대적인 정(情)을 가리킨다.

사랑과 정! 이 둘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정은 주고받는 것이며,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이에 반해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하늘은 영원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땅은 항상 변한다는 사실과 너무나 부합(附合)하지 않는가? 사랑보다 정이 더 끈끈한 이유는, 이처럼 붙기도 하고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집착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이기 때문이다. 달리 비유하면 사랑은 태양과 같고 정은 달과 같다. 태양은 항상 일정한 빛을 스스로 발산하는데 비해, 달은 태양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회현삭망(晦弦朔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은 태양처럼 스스로 발광을 한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은 막힘이 없다. 이에 비해 달은 반사를 한다. 그러기 때문에 태양이 보이지 않으면 달은 어두워진다. 이는 곧 막힘이 있다는 말이다. 하늘은 천국(天國)이요, 땅은 지옥(地獄)이라고 예부터 이른 까닭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땅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데, 대개의 경우 그들은 죽은 다음에 천국에 들어가는 걸로 믿는다. 그것은 물질적인 육신으로는 온전한 무형인 천국으로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하늘이 땅보다 우위(優位)에 있다는 차별상(差別相)에 물든 결과다. 하늘과 땅, 이 둘은 어느 것이 높고 낮은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본래 한 몸이다. 다만 그 작용과 기능의 양태(樣態)가 다를 따름이다. 그것은 음과 양이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하늘은 거대한 양의 집합이요, 땅은 거대한 음의 집합이다. 이것을 우리 조상들은 건(乾☰)과 곤(坤☷)이라는 부호로 나타냈다. 건이 다하면 곤이 되고, 곤이 다하면 건이 되는 것은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다. 물과 얼음이 본래 하나인 것처럼 건곤과 음양도 본래 하나이니,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