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에 종로포럼에서 발표할 '바둑의 수리로 본 우주변화의 원리'를 준비하면서 많은 걸 느낀다.
바둑은 요임금이 아들 단주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바둑은 '깨달음의 도구'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바둑은 치열한 승부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내기 바둑까지 등장하였다.
하긴 적지 않은 상금을 걸고 하는 각종 바둑대회도 심하게 말하자면 내기바둑이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이 온통 돈을 내걸고 하는 '돈 세상'이니 그 속에서 돌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노릇이다.
바둑은 왜 밭둑에서 유래했을까?
바둑은 왜 19로 360개의 점으로 되어 있을까?
바둑판은 왜 사각형으로 만들었으며, 네 개의 직각은 무얼 의미할까?
바둑판은 커다란 田이며, 81개의 田이 있게 되었을까?
바둑판에는 왜 36개의 囲가 있을까?
田에 들어 있는 十과 둘레의 一을 합한 네 개의 土는 무얼 가리킬까?
바둑의 천원점은 왜 계가에서 제해야 할까?
花點과 星點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둑판의 돌은 왜 口속에 놓지 않고 점에 두는 걸까?
바둑판의 바탕은 왜 황색으로 할까?
바둑판의 화점은 왜 9개일까?
천원을 이루는 한 개의 十과 360개의 十의 차이는?
바둑과 아리랑은 무슨 관계일까?
바둑판의 360점은 열 개의 숫자 중에서 유독 7로만 나누어지지 않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바둑의 324 口와 1,296선의 의미는 우주상수 129,600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바둑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둑의 교훈을 정리한 '위기십결(囲棋十訣)'은 지극히 인간의 처세에 국한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바둑은 처세를 넘어서 우주변화의 원리를 일러주는 깨달음의 도구다.
요임금이 알려주려고 한 것이 고작 처세에 관한 것일까?
올비른 처세를 하려면 먼저 우주변화의 원리에 밝아야 한다.
그것은 천지의 도수(度數)를 아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무지몽매함을 일깨우려고 한 성군 요임금의 생각이다.
아! 바둑은 무한한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거두게 하는 영원한 밭이로다.
과연 지금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알고서 바둑을 둘까?
가뜩이나 치열한 생존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도모하고 광대무변한 해탈의 세계로 안내하는 바둑 본연의 의미를 일깨울 수는 없을까?
바둑은 장차 전 세계의 무지를 타파하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천부동의 일꾼들이여!
부지런히 공부하여 영혼의 선생이 될지어다.
일당백하는 지도자, 선생의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아닌가?
조선을 선생국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