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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一積을 하면 十鉅가 되며, 그것은 無櫃化三이 되어야 할까?

영부, 精山 2012. 7. 30. 10:25

2. 왜 一積을 하면 十鉅가 되며, 그것은 無櫃化三이 되어야 할까?

 

댓글이 없네요. 댓글이 안 달리면 더 이상 저도 글을 쓰지 않으리라고 작심했었지요. 메아리 없는 외침은 공허할 따름이지요.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나눌 수 있지요. 상대 없는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하던가요?

그런데 또 다시 맘이 약해져서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천부경과 지부경이 속 시원하게 다 풀어지고 보니 예부터 '非人不傳(사람다운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하라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보건, 말건, 알건,모르건 상관이 없이 무조건 진리의 말씀을 공개하였지만,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진실로 일심을 지니신 분들과 같이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굳이 제가 판단하지 않아도 이미 하늘은 다 준비해 두었다는 걸 확신합니다. 인연이 있으면 반드시 만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섭리이지요.

 

기왕에 제시한 문제이니 이것까지만 풀어 드리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의 반응에 따라 글을 지속할 건지, 그만 둘 것인지 결정하겠습니다.

 

왜 一積을 하면 十鉅가 되며, 그것은 無櫃化三이 되어야 할까?

一積十鉅無櫃化三을 풀이한 그간의 해설들을 보면 거의가 '1이 10으로 쌓이는데 궤(틀)가 없이 된 셋이라'는 식으로 되어 있더군요. 여러분, 솔직히 이렇게 풀이한 게 이해가 됩니까? 그것은 아마도 천부경 첫 머리와 끝을 '무시무종'이나 '본래무일물'이라는 식으로 풀이한 것과 연관지어서 '1에서 10까지 쌓여도(만물이 아무리 쌓여도) 본래 틀이 없는 3극으로 된 것이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일석삼극'이라고 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가 셋으로 벌어졌다면, 그 셋이 다시 하나로 쌓여야 비로소 온전한 모습과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석삼극'은 '벌어진 상태'를 가리키고, '일적십거'는 다시 하나로 모여 쌓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흩어질 때가 있으면 쌓이는 때도 있어야 합니다. 벌어지는 게 '삼극'이었다면 모이는 것도 당연히 '일적삼거'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물론, 3극한 천지인이 다시 3극으로 갈라지면 천3, 지3, 인3으로 도합 9변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 있는 묘수인 1(十)까지 합하면 도합 열 개의 수가 나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하지만, 그것은 천지인을 각기 두 번, 세 번 가른 입장일 적에 가능한 일입니다. 즉, 선이 두 개, 세 개 겹쳐야 비로소 十이 된다는 말이지요.

 

아직, '천이삼,지이삼,인이삼'이 나오기 전의 상태, 즉 '천일일,지일이, 인일삼'한 상태에서는 그냥,3극으로 갈라진 상태이지, 결코 쌓이고 모이는 상태는 아닙니다. 다시 모이고 쌓이는 '일적'의 과정은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의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一이라는 숫자는 '갈라짐'이나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는 원방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바로 '한 번 가른 상태'입니다. 天二, 地二, 人二는 하늘의 깨달음과 땅의 깨달음이 합하여 한 몸이 된 十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天三, 地三, 人三은 거기에 인간의 이치까지 통달한 상태입니다.

 

앞에서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을 마치 하늘이 먼저요, 땅이 두 번째요, 사람이 세 번째로 태어난 걸 가리킨 것처럼 풀이한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천지인은 사실 동시에 한 곳에서 탄생하는 게 철칙입니다.  비유하자면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식은 동시에 탄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육신으로 보면 부모가 먼저 나셨지만, 자식이 탄생하는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동시에 탄생하지 않나요? 즉, 천부경 '一始'의 一은 우주나 만물 등, 물질적인 면을 가리킨 게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서 벌어지는 깨달음의 차원으로 가리킨 것입니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일적십거무궤화삼'이나 다음에 나오는 '천이삼지이삼인이삼대삼합육'등을 일관되게 풀이 할 수 없지요. 그러니 그냥 제멋대로 풀이를 하기 십상입니다. 一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十을 쌓을 수 없습니다. 즉, 하늘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안 되고, 땅이나 인간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天은 地와 합하는 十을 하고, 地도 역시 人과 十을 하며, 人은 天과 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人은 天地의 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대삼합육'에 속하지는 못합니다.  大三은 天3극과 地3극이 합한 상태입니다. 자세한 것은 '대삼합육생칠팔구'에서 할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무궤화삼에 대한 것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일적삼거'를 하면 사실상  '일적십거'가 됩니다. 그러나, 天地가 2변, 3변으로 十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온전해진 大十字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3극이 다시 모여 하나 가 된 大十字가 이루어지겠지만,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한 1극의 상태에서는 그것은 '예정'이나 '계획'에 들어 있을 따름이지, 결코 구체적인 형상은 띨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궤화삼'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천부경은 하늘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늘은 모든 게 무형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직 '온전한 셋이 하나로 되지 못한 상태'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1에서 갈라진 셋은 '삼극'이라고 하지만, 다시 하나로 모여서 이루어지는 셋은 '化三'이라고 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천부경의 五七一묘연은 지부경의 '天一貫五七'과 비교해야 합니다. 기타 나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은 지부경의 '절화삼삼(折化三三)'과 비교하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천부경에서는 '일석삼극'이라고 하였지만, 지부경은 '절화삼삼'이지요. '析'이나 '折'은 다 같이 '쪼개다, 가르다, 끊어내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석'은 생장을 위한 가름이고, '절'은 수렴을 위한 가름입니다. 비유하자면, '석'은 씨앗에 싹이 터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절'은 다 큰 나무를 용도에 맞게 잘라내는 것입니다.

 

천부경이나 지부경을 통달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무슨 신선의 몸으로 화하거나 커다란 능력이 치솟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면 차라리 천부경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게 현명합니다. 천부경이나 지부경은 '깨달음의 원리와 방편'을 일러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떤 사물을 보아도 막힘이 없이 그 이치가 보이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물을 볼 적에는 반드시 천(무형적인 이치 - 조화), 지(물질적인 형상 - 교화), 인(활용 - 치화)라는 3극이 보여야 합니다. 그것은 각기 4상과 5행, 6기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걸 통달하면 저절로 중심을 밝히는 7성이 깃들이며, 8괘에 능통하여, 9천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해탈의 경지에 이릅니다.

 

이런 것은 지부경의 '정구포일'과 '일구백굉, '동십생일'과 '절화삼삼' 등을 알고 나면 희열을 느낄 정도로 오묘한 이치에 감동을 하게 마련이지만, 천부경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데, 어찌 지부경을 논할 수 있나요?  알고 싶으면 일심으로 전력을 다 해 보세요. 그냥, 이곳 카페에 들어와서 귀동냥이나 하려고 기웃거리는 건 자유겠지만, 댓글 하나도 달지 않고, 고마움의 표현도 없이, 전화문의나 직접 방문하여 문의하는 성의도 없는데, 어찌 그런 마음 바탕에 삼신이 자리를 잡을 수 있나요? 머리 좋은 분들이니 그냥 적당히 연구 하시다 보면 알 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한 평생 모든 걸 마다 하고 오직 진리에 매진해 온 저도 겨우, 환갑이 되어서 영적인 제헌절에 알게 되었을 정도로 심오하고 신비로운 것이 바로 천부경과 지부경,  인부경입니다. 인부경 108자는 천부경, 지부경에 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더군요.

 

인연이 있는 자는 다시 만날 것이요, 복이 있는 자는 한없는 축복을 받으리라,

그러나 복이 없는 자는 입 속에 넣어줘도 뱉어낼 것이요, 인연이 없는 자는 평생을 같이 해도 남남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