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符의 符는 '부신(符信 부)'라고 한다. 부신은 '믿음의 상징적인 부호'라는 말이다. '부'라고 하는 발음은 '付 - 줄 부'에서 온 것인데, 그 위에 竹을 붙여 符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종이를 대신하여 대나무에 부신을 새겼기 때문에 나온 글자다. 이런 식으로 풀이를 하면 天符는 '하늘이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 준 부호'라는 말이 된다.
하늘은 본래 무형인데 어떤 상징으로 자신을 믿게 할까? 그것은 깨달음만이 유일하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부호가 바로 천부라고 할 수 있는 바, 그것은 바로 一이다. 그 깨달음을 형상화 한 것이 地符인데, 그것은 하늘의 깨달음에 더하여 땅의 깨달음이 함께 한 상태이므로 十이라고 한다.
그래서 천부경은 一로 시종을 이루고, 지부경은 十으로 시종을 이룬다. 一과 十의 개념을 아라비아 숫자 1 ~ 10으로만 본다면 천부경을 이해하는 일은 지난하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숫자도 역시 생긴 모습(형태)과 기능(변화)라는 양면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면으로 一始無始一과 十終有終十도 살펴야 한다. 하늘에서 一이 시작한다는 것은 '깨달음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즉, 어둠과 혼돈으로 휩싸인 의식의 상태에서 최초의 깨달음이 생긴 상태다. 그러나 그것은 무형의 상태인 이치에 지나지 않으므로 반드시 유형적인 땅의 一과 합하는 十을 통해야 비로소 인간의 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비록 一始를 했어도 始一은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갈라진 一과 상대적인 합한 상태 十에서 보면, 一의 시작은 곧 十의 종말을 가리킨다. 하지만 비록 一이 갈라져 나갔다고 하여도, 그것은 三.一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一이 갈라져 나갔다고 하는 것은 셋 중에서 어느 하나를 깨달았다는 뜻이지, 결코 그 셋이 갈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十終을 하여도 終十은 有한 상태라고 했던 것이다.
十은 아홉 개의 숫자를 움직이게 하는 바탕이다. 十이 튼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면 아홉 개의 숫자는 맘 놓고 움직일 수 있으니, 이는 곧 '안정 된 상태'이므로 靜九라고 한다. 만약 十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十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므로 動九라고 한다.
하늘은 1,2,3으로 벌어지고, 땅은 4,5,6으로 자리를 지키며, 인간은 7,8,9로 세워진다. 그러나 이 아홉 개의 숫자는 十이 없다. 그러므로 動九라고 한다. 그래서 十을 찾기 위한 치열한 몸짓을 하는데, 그걸 가리켜 상극의 법칙이라고 한다. 1은 9를 만나 十을 이루려 하고, 2는 8을 만나 十을 이루려 하며, 3은 7과, 4는 6과 각기 十을 이루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5는 5를 만나 十을 이루는데 하늘에서는 5이지만, 땅에서는 十이 된다. 여기서 대연수 50과 대정수 55가 나오게 되는데, 그건 나중에 언급할 성질이다.
지금은 靜九와 動九, 靜十과 動十에 대한 차이를 명료하게 구분하는 데에 주력하기로 한다. 十을 얻으면 靜구요, 十이 없으면 動九다. 動九에서는 靜十이요, 靜九에서는 動十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천부경에서는 十이 없으니 動九靜十이라 하고, 반대로 지부경에서는 十으로 시작을 하였으니 動十靜九라고 한다. 그래서 지부경에서는 '정구포일동십생일절화삼삼'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靜九는 왜 抱一(一을 품에 안음)한다고 했을까?
동구에서는 아홉 개의 숫자가 전부 하늘에서 짝을 만나지 못하였으나, 그것이 땅의 아홉 개의 숫자와 만나면 짝을 만나게 되는데, 그걸 상징한 것이 바로 十이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천지는 十을 할까? 천지가 十을 한 결과가 바로 인간과 만물, 즉 인물이다.
오늘의 주제는 '천지는 어떻게 十을 할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