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 드린 것처럼 추석이 지난 후에 천부서원 제2기 개강을 하였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두 군데, 인천에서 한 군데, 남양주, 파주 등 1주일에 다섯 차례의 강좌를 시행 중에 있습니다. 지난 1기 강좌 시에는 수강생들에게만 국한하여 강좌록과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하였지만, 2기 강좌는 모든 걸 다 개방하려고 합니다. 굳이 비밀로 할 것도 없으며, 감출 필요도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 푸른 하늘처럼 선악이나 청탁을 가릴 것 없이 그냥 세상에 비를 내리려고 합니다. 인연이 있으면 빗물 속의 생명의 씨를 받아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흘러내려가겠지요. 동영상을 찍는다면 그것도 역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금주에 시행한 제1 강좌록을 공개합니다. 수강생이건, 비수강생이건 본 강좌의 내용을 보신 후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언제라도 밑에 댓글로 고견을 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 왕정산 -
제 1 강
제 1 강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오늘부터 천부경 2기 강좌를 시작합니다. 1기 강좌가 지난 4월 말에 끝났으니 약 5개월 만에 다시 강좌를 속개하는 셈입니다. 세월은 쏜살같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빠르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동서고금과 빈부의 격차를 떠나 모든 이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천지의 선물입니다. 그걸 얼마나 잘 활용하는 가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時間이란 문자는 태양(日)을 모시는(寺 - 모실 시)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만일 사람이 하느님을 모시는 과정을 가리킨다면 侍天主(시천주)라고 합니다. 시천주라고 하니까 기존의 종교처럼 저 하늘 어딘가에 따로 계시는 천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시천주는 바로 자기 자신의 영대(靈臺 - 신령이 사는 집)에 천주님을 모신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부동 2기 강좌는 바로 시천주를 확실히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천주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천주님의 뜻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천주님이라고 하니까 카톨릭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걸 떠나서 근원적인 존재를 가리킨 용어입니다. 그게 맘에 걸린다면 그냥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겁니다. 여하튼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겉만 사람이지 속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천부경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나왔습니다. 그걸 우리 조상들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불렀지요.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홍익인간의 출현을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홍익인간의 정의(定義)에 대한 것만 언급하려고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은 지금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천부경에 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천부경의 천부(天符)에 대한 언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부경은 천부를 전해 주는 경(經)인 셈이니 반드시 천부의 정체를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부는 ‘하늘의 부신(符信)’이라는 말인데, 符는 ‘부신 부, 수결 부’라고 합니다. 부신은 ‘믿음의 부호’ 혹은 ‘소식을 알리는 부호’라는 뜻인데, 거기에 天이 붙었으니 ‘하늘의 뜻을 전하는 부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라고 하면 각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의 뜻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불교에서는 자비를, 유교에서는 仁을 연상하겠지만, 천부경에서는 그런 용어가 전혀 없습니다. 천부경은 一로 시작하고 一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곧 천부경에서 말하는 신의 뜻은 一에 있다는 신호입니다.
一을 가만히 보세요. 그 속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라는 뜻도 있고, 온전하다는 뜻도 있으며, 첫 번째라는 뜻도 있고, 전체라는 뜻과 그 전체를 이루는 개체를 가리키는 뜻도 있습니다. 역학적으로는 태극(太極)이라는 뜻을 부여합니다. 一이라는 문자 하나만 가지고서도 이처럼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천부경 81자 전체를 놓고 보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겠습니까? 천부경을 사람들이 난해하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符)의 매력입니다. 符라는 글자를 보면 竹(대 죽) 밑에 付(줄 부, 붙일 부, 청할 부)가 있습니다. 付은 사람(人)이 寸(마디 촌)한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데, 寸은 손에 무언가 물건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문자입니다. 즉 사람이 손에 물건을 들고서 누구에겐가 주려고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付입니다. 거기에 竹이 붙은 게 符인데, 대나무는 예전에 종이가 나오기 전에 사용한 도구입니다. 대나무의 '대‘는 <사람이나 그의 성격, 기질이 곧고 꿋꿋하며 힘차다>는 상징입니다. 대나무를 종이대용으로 사용한 것은, 물론 다른 것보다 활용가치가 높은 것이 주원인이겠지만, 이처럼 곧고 꿋꿋하며 힘찬 상징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양과 달리 동양, 그중에서도 우리민족은 대나무로 붓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곧고 꿋꿋하며 힘찬 대나무의 기질은 곧 선비의 기질을 대변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符라는 글자에는 이처럼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符의 의미이며 매력입니다. 많은 글자보다는 간략한 게 더 함축적이죠. 천주의 뜻을 함축적으로 간명하게 전달해 주는 방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바로 符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벽주로 오신 증산께서도 ‘符書 以外 別無通’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선도나 불도, 유도 등 모든 도서(道書)들은 符를 설명해 놓은 경전들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경전의 문구보다는 符에 훨씬 더 함축적이면서 신비로운 의미와 기운이 더 많이 배이게 마련입니다. 사실 符는 예전에 신선들이 주로 사용했었지요.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림이 나오고 문자가 발달하면서 빛이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는 함축적이기 때문에 그 전모(全貌)를 밝힌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자는 누구나 알기 쉽지만 符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차츰 차츰 사람들이 멀리하게 마련이었죠. 하지만 부를 사용하던 전통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무속인이나 절간에서 부적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신선들이 사용하던 符의 흔적입니다.
인류는 맨 처음에 부를 사용했는데, 그걸 좀 더 쉽고 상세하게 전달하려고 나온 것이 금문(金文)이나 녹도문(鹿圖文) 같은 원시글자였으며, 그걸 더 보완하고 수정을 거치면서 나온 것이 현재 인류가 쓰고 있는 문자와 언어입니다. 물론 그런 문자가 발달하면서 문명도 발전하였지만, 그만큼 인간의 영성(靈性)은 퇴보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가을을 가리키는 미회(未會)로 접어든지 이미 70년이 넘었습니다. 가을은 열매를 가리는 시기입니다. 열매는 곧 씨앗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씨앗의 부활은 符의 부활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