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공부할 내용입니다.
제 2 강
십종유종십(十終有終十)
전번에는 0과 1에 대한 걸 말씀드렸는데, 그것은 천부경의 첫머리 ‘一始無始一’에 대한 풀이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였습니다. 사실 문자로만 푼다면야 ‘一이 시작하는데 시작한 一이 없다’는 정도로 가볍게 풀 수도 있습니다. 그걸, 어느 분께서는 중국식 한자로 풀 것이 아니라 한국식의 어순(語順)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글자의 순서대로 ‘一이 시작하는데 無에서 시작하는 一’이라고 했다는 건 이미 전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를 풀이하는데 중국식과 한국식이 따로 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고운 최치원이 81자로 만든 천부경은 이두문자의 힘을 빌어서 만든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의 문자를 빌려서 우리민족의 소리와 맞추어 억지로 만들어 놓은 81자는 아무리 해석해 봤자, 남의 다리를 긁는 격이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이 한편으로는 ‘81자 천부경은 진본 16자 천부경을 해설한 해설편이다’는 말씀도 하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 자체가 모순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천부경 해설판이라면 당연히 진본 천부경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을 것이고, 그렇다면 비록 한자와 금문이라는 형태는 다르지만 그 내용은 동일하다는 말이 되는 게 아닌가요? 81자 천부경을 진본 천부경의 해설판이라고 하면서도 그걸 풀이하는 건 남의 다리를 긁는 격이라고 한다는 말이 여러분은 쉽게 납득할 수 있나요? 아마 그분은 최치원 선생의 81자 자체를 자신이 주장하는 금문 16자의 내용을 엉터리로 해설판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다고 밖에 할 수가 없겠군요.
그런 주장은 천부경의 전래와 원조를 밝혀야 풀릴 수 있는 성질인데, 사실 그런 건 결론이 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부경은 맨 처음에 한자로 만든 것도 아니지만, 금문이나 녹도문자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어느 것이건 천부의 시발(始發)은 문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천부경은 천부인에서 나왔다고 해야 맞습니다. 환인께서 환웅에게 전수해주신 천부인(天符印)이 바로 천부경의 원조입니다. 천부인은 글자로 된 것이 아니었는데, 후일 그 뜻을 문자로 새긴 것이 천부경입니다. 그러므로 천부경의 원조를 굳이 찾는다면 천부인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금문이나 녹도문 등, 어떤 특정한 문자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구전지서(口傳之書)라고 하였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는 얘기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부터 그건 특정한 문자나 언어로 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천부는 하늘의 말씀을 상징한 것이요, 그것은 무형의 진리를 가리킨 것인데, 어찌 특정한 언어나 문자에 국한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여도 형상이 있으면 완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형상이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아닌 그림자인데 그걸 어찌 실체적인 원본이라고 할 수 있나요? 형상의 形은 井(우물 정)과 彡(터럭 삼)이 합친 문자입니다. 즉 우물에 비친 천지인 3신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지요. 우물에 비친 건 실체가 아닙니다. 바람이 불면 흩어지고 이지러지는 한갓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형상은 사실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림자가 아닌 실체에 눈을 돌리려고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형상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후손들에게 그 뜻을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가장 함축적인 부호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걸 천부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천부인이 과연 어떤 걸까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추측하건대 점(ㆍ), 횡(一), 종(丨)이라는 세 개의 평면적인 부호와 원(◯), 방(□), 각(△)이라는 세 개의 입체적인 부호를 가리킨 게 아닐까요? 이처럼 여섯 가지의 부호라고 추측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점(ㆍ)은 텅 빈 하늘에서 무언가 최초로 생긴 걸 상징한다고 봅니다. 허공에서 최초로 생긴 것은 한 점으로 상징하는 것이 아마 최초이며 최상의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점(點)이라는 문자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點은 흑(黑)을 부수로 하며 占(차지할 점)에서 음을 따 온 형성문자라고 하는데, 黑에는 창문 틈으로 방에 있는 불이 밖으로 나오는 걸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밑에 있는 네 개의 점 灬은 ‘불 화’자입니다. 즉, 黑에는 불이 있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占(차지할 점)과 합하여 點이 되면 어두운 가운데서 밝은 불빛을 차지한다는 뜻이 되는데, 여기서 ‘점을 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즉 어둡고 무지한 상태를 타개하여 밝은 빛을 차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온 것이 점을 치는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점(ㆍ)에는 텅 빈 허공(무질서, 혼돈, 무지)에서 최초에 생긴 한 점의 빛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天符라고 보는 겁니다. 다음으로 태초에 생긴 天符인 한 점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종횡(縱橫)으로 뻗어나가는데 그걸 상징하는 부호가 丨과 一인데, 이것도 역시 天符입니다.이 셋을 가리켜 천부3인이라고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걸 토대로 해서 한글은 물론 문자와 언어가 다 나왔습니다. 천부가 영원한 무형의 이치를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면에서도 이것은 합리적인 추측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면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고, 만일 입체적인 면으로 본다면 원방각(◯□△)의 형태를 취하게 마련입니다. 원방각은 모든 도형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형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방각에 관한 것은 ‘天一一地一二人一三’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문자나 부호를 내세워 그것만이 진실인 양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조가 됐건, 아니건 태초의 천부인을 얼마나 잘 파악했느냐 하는 일입니다. 비유하자면 ‘원조 설렁탕’이라고 간판을 달고 아무리 싸워봤자, 별로 실용적인 일이 못 되는 것과 같습니다. 원조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맛있게 먹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금문이 진본 천부경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지 못한다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요?
앞에서 ‘일시무시일’과 ‘일종무종일’의 뜻은 막연한 무시무종을 가리킨 게 아니라 3극이 하나로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는 믿음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가 하는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애매하게 말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천부3인을 통하면 그것이 일석삼극이 되어 일적십거로 화하게 되며, 그것이 三四로 成環하여 오칠일묘연하여 마침내 만왕만래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이 6수이기 때문에 점, 횡, 종, 원, 방, 각이라는 천부3인(음양으로 벌어지면 6)이 나온 것입니다. 6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코스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육도윤회(六道輪廻 :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도, 천도)’라는 교리로 그걸 밝혀 놓았습니다. 그걸 수리를 통해서 상세하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천부경입니다. 자세한 것은 ‘大三合六生七八九’에서 언급하기로 하겠지만, 천부경에서는 ‘天二三地二三人二三’하는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6에서 해탈할 적에 비로소 7, 8, 9라는 내면의 실체로 들어간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냥, 우주만물은 시종이 없다고 하는 건, 대부분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무일물인 실체를 깨달으라는 가르침으로 귀결하지만, 一卽三은 천지인 3신에 들어 있는 음양과 4상, 5행, 6기, 7성, 8괘, 9궁 등을 구체적으로 활용하여 영원한 실체인 十一歸體로 화하도록 안내를 해주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고 하는 게 전자(前者)라면, 구체적으로 방울을 달아매는 것이 후자(後者)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부경의 첫 구절 ‘十終有終十’과 비교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一과 0에 대한 상관관계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0과 一에는 각기 음양도 있으며, 음양의 중화체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0의 음양은 ●과 ◯이었으며, 一의 음양은 一과 - -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음양은 음과 양의 중심에 있는 중화작용에 의하여 변화를 한다는 것도 알았으며 변화는 3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형상은 음과 양이라는 2요, 변화는 3이라는 숫자로 상징한다는 걸 알았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