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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 2

영부, 精山 2012. 10. 8. 07:48

이렇게 보면 0과 一이 한 쌍을 이룬 상대이므로 천부경에서 一로 시작을 하였다면, 당연히 지부경에서는 0으로 시작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러나 지부경의 시작은 0이 아니라 十이라고 하였으니 이건 또 무슨 이유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0과 十의 차이를 명백히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천부경에서 一은 無始一에서 시작하였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곧 0을 의미한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無始一을 가리켜 <天一 地一 人一이라는 세 개의 一중에서 그 어느 것도 시작한 것이 아닌 一>이라는 식으로 풀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그것을 0이라고 하니 좀 의아해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0은 ‘혼돈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개의 一중에서 그 어느 것도 시작한 것이 아닌 一>도 역시 혼돈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셋이 하나로 혼돈된 상태는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아무 것도 제대로 자신의 一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無始一이라고 하게 된 것이라는 건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0이 혼돈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도 설명을 드릴까요? 0을 많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알고 있으나 이미 앞에서 ●과 ◯을 비유하면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그 속에는 무수한 음과 양이 뒤범벅이 되어 혼돈된 상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一에도 시 - 중 - 종이 있어야 합니다. 즉

 

 

始一(0) ------- 中一 (一) -------- 終一(十 혹은 二)

 

 

에서 보는 것처럼 0은 1의 시작이요, 十은 1의 마지막입니다. 0에서 나온 1은 9까지 아홉 단계를 지나면 다시 10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 1의 마지막을 혹은 2라고 한 것은 단순하게 세 개의 숫자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즉 0 ↔ 1 ↔ 2로 변화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두 번 갈라진 二를 한데 겹치면 十의 모양이 됩니다. 지부경의 十은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킨 것이죠.

 

1의 이전은 0이 맞을까요? 아니면 10이 맞을까요? 0이나 10이나 다 같은 거라고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일시무시일이나 일종무종일을 무시무종이라고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즉, 0에서 왔다가 0으로 간다는 공수래공수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시작은 0이지만 마침은 10인데 어찌 둘이 같다는 말인가요? 물론 본질적인 면에서는 같은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다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0은 자궁 자체를 가리킨 것이요, 10은 자녀를 출산한 자궁을 가리킵니다. 자궁이야 항상 같지만, 그 내용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나요? 0이라는 자궁은 무시무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10이라는 자궁은 자녀를 생산했기 때문에 유시유종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처럼 十은 1의 마지막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1과 0의 중심입니다. 0과 1만 놓고 보면 분명 상대적인 극과 극이라고 해야 하지만, 0과 1을 다 합하면 十이 되기 때문입니다. 0과 1이 동시에 완성되는 곳이 바로 十이라는 말입니다. 十이 없으면 1은 계속 변화 중에 있으며, 0도 역시 무형인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천부경의 一은 지부경의 十에 이르러 마침내 그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천부경에서 一始하여 析三極으로 쪼개진 一은 다시 十鉅로 無櫃化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人中天地一로 一終을 한다는 말입니다. 一始하는 一은 0이었으나 一終하는 一은 十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건 천부경 마지막 해설할 적에 다시 언급할 것입니다.

맨 처음의 一始한 一은 人中天地一한 상태가 아니라, 그냥 3극이 한데 뒤엉킨 혼돈이었습니다. 그것이 人中에서 天地가 하나 되면 一始는 一終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一의 마지막은 一이 쌓여 겹치는 十의 등장입니다. 즉 一終은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마련인데, 그걸 가리킨 것이 바로 十始입니다.

 

一은 하늘을 상징하는 부호요, 十은 땅을 상징하는 부호인데, 一이 시작을 하면 반대로 땅에서는 十이 終을 하고, 十이 始하면 一은 終을 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부경에서는 一始로 시작을 하였고, 지부경에서는 十終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一로 시작을 하였으나 無始一이라고 한 것과 달리 十이 끝나면 有終十이라고 하였군요. 무엇이건 끝에서는 모든 것이 다 無로 돌아 가는 게 상식이 아닌가요? 그래서 一終無終一이라고 하였는데, 왜 十은 굳이 有終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一과 十을 놓고 보면 十이 0과 같다고 해야 하며, 그러기 때문에 당연히 十은 無終十이라고 해야 되는 게 상식이 아닐까요?

 

하늘은 본래 무형이기에 시작과 끝도 無라고 했다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겠군요. 반대로 땅은 유형이기에 아무리 끝난다고 하여도 무언가 남아 있으니 有라고 하는 게 아니냐고 대답한다면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해야 겠군요. 그러나 그건 결코 근원적인 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十에 대한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十의 형태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一이 가르거나 쪼갠 느낌이라면 十은 반대로 두 개를 한데로 얽어맨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一은 묶은 것을 풀어놓는 것이라면 十은 반대로 풀어놓은 것을 한데로 묶어 놓았습니다. 즉, 하늘은 모든 걸 풀어놓는 역할을 하기에 푸른색(풀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고, 땅은 모든 걸 품어서 단단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누런색(누른 색)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푸른 것을 창(蒼)이라고 하는데 ‘푸르다, 무성하다’는 등의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언가 뭉친 것을 풀어헤쳐서 무성하게 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蒼이라는 글자를 보면 艹(풀 초 : 풀어 헤침)와 창(倉 : 곳집 창)이 한데 합친 글자이니 이는 곧 ‘창고를 풀어 헤치다’는 뜻입니다. 倉에 刂(칼 도)가 붙으면 創(비롯할 창, 만들 창)이 되는 등, 푸름을 가리키는 蒼은 모든 걸 풀어 놓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누런색은 ‘누른 색’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누르다’에서 파생한 글자입니다. 누르다는 위에서부터 무언가 압력을 받아 단단하게 뭉쳐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압력이 커지면 열이 발생하는데, 극으로 치달으면 붉은 색이 되지만, 적당하게 힘이 주어지면 黃色이 됩니다. 黃을 가리켜 ‘누를 황’이라고 하며, 땅이라고 하는 것은 땅은 위에서부터 커다란 눌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부경에서 一析三極이라고 하는가 하면, 반대로 一積十鉅라고 하는 것은 一이 풀어지면 3극이 되고, 一이 겹쳐서 쌓이면 땅처럼 단단하고 거대한 十鉅의 상태가 된다는 걸 일러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一析을 하면 三極이 되고, 一積을 하면 十鉅라고 했다는 표현입니다. 一析의 반대는 一積이라고 하지만, 三極의 반대는 十鉅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천부경 풀이를 보면 十鉅를 가리켜 ‘10으로 커지다’ 또는 ‘열씩 묶다’는 식으로 풀었는데, 그건 문자도 제대로 풀이하지 못한 것이니 결코 천부의 의미를 파악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건 어차피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이해하고 일시무시일과 십종유종십의 상이점에 대한 것을 파악하는 데에 주력하도록 하겠습니다.

 

十이 끝나도 끝나는 十이 있다고 한 것을 一로 시작을 해도 시작하는 一이 없다고 한 것과 비교를 해볼까요? 이 말을 앞에서 살핀 것처럼 三極과 十鉅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三極은 셋으로 갈라졌다는 말이지요? 十鉅는 그 반대입니다. 極은 끝까지 다 갈라졌다는 말이고, 鉅는 그와 반대로 갈라진 걸 다시 튼실하고 크게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곧 셋으로 갈라졌던 게 다시 하나로 겹치면서 쌓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배우자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두게 되니 결국은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이걸 一析三極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나 이 셋은 그 어느 것도 혼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셋이 하나 될 적에 모든 것이 가능한 법이므로 無始一이라고 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天一一의 입장에서 본 것이고, 地一二의 입장에서 본다면 天과 합한 상태이므로 十으로 출발을 하게 마련입니다. 둘이 합하는 걸 十으로 상징하는 건 기본입니다. 본래 地라고 하는 것은 무형인 天을 받아들인 상태이므로 天一과 地一이라는 두 개의 선이 합한 것이므로 十이라는 부호를 사용하게 된 겁니다. 즉, 天符는 一이요, 地符는 十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두 남녀가 합하여 부부가 되어 十을 이룬다는 것인데, ‘총각 딱지나 처녀 딱지를 떼어 버리는 셈’이 아닌가요? 비록 한 개인(一)으로 시작한 一始는 있지만, 짝을 만나 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으니 無始一이라고 했던 게 천부경이라면, 지부경의 첫 구절 十은 無始一에서 벗어나 짝을 만나 한 가정으로 이루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걸 다른 말로 부부가 十을 한다고 하는 겁니다. 남성의 몸에 비해서 여성의 몸은 본래 음기가 강한 법인데, 그 증거가 바로 자녀를 잉태하는 자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같은 十을 하면서도 남성은 배설을 주로 하는데 반해 여성은 받아들이는 데에 비중을 크게 두게 마련입니다. 十終은 十의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니, 그것은 곧 새로운 생명인 자녀의 탄생입니다. 이걸 상징하는 숫자가 바로 十一이며, 십일귀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부가 더 이상 十을 못하는 十終이 온다고 해도 자녀는 계속 생명을 이어가고 새로운 十으로 이어집니다. 쉽게 비유하면 0에서 시작한 1은 10으로 끝나면서 11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말입니다. 0은 無이지만, 10은 有입니다. 이런 까닭에 지부경의 첫머리를 ‘十終有終十’이라고 하게 된 겁니다.

 

천부경의 析三極은 갈라진 一이기에 아무리 해봐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無始一이라 한 것이며, 지부경의 十은 셋이 하나 된 것이므로 반드시 十을 남겨 존속하게 합니다. 즉, 一은 하늘의 무형적인 깨달음이요, 十은 그것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화한 상태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一始의 一과 無始一의 一은 서로 달랐던 것처럼, 十終의 十과 有終十의 十도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一始의 一은 셋이 한데 모인 것이지만 無始一의 一은 析三極한 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十終의 十은 세 개의 十이 한데 모인 大十임에 반해 有終十의 十은 그 세 개의 십이 각기 折化한 十을 가리킵니다. 그것을 지부경에선 折化三三이라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