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주말을 맞이했네요. 맨날 같은 일상의 반복이건만 왜 그리 시간은 빨리 가는 지요? 싸이는 계속 빌보드차트 2위에 3주간 계속 머물러 있네요. 정상을 차지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매스컴에서 얘기한 걸 본 일이 있는데, 그게 맞는 말인가 보군요. 그래도 그 정도라면 충분히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다고 봅니다.
어제의 주제는 <진리 자체의 입장에서 본 진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라는 말 자체부터가 사실은 인간의 의식에서 나왔을 뿐, 정작 진리 자체는 그런 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겠죠. 따라서 진리의 목적이란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제 자체가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굳이 그런 주제를 정한 이유는, 될 수 있으면 생각의 폭을 넓혀보자는 뜻에서 였습니다. 진리 자체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게 아마 타당할 겁니다. 目的이란 말은 ‘눈으로 보는 게 마치는 곳’이니 ‘희망’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아직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입장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진리는 본래 완전한 것이기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요. 진리는 없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그런 존재가 무얼 더 바랄 게 있나요? 그러니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존재할 따름이죠.
아니,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인간의 의식일 뿐, 진리 자체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완전한 無心의 경지가 바로 진리라고 봅니다. 아마 그런 경지를 동경(憧憬)하여,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이나 목적을 세우고 실천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게 바른 인생이라고 가르친 것이 성현들이 아닐까요? 예수의 탄생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상태라고 요한복음에 기록을 했더군요. 즉 진리를 생활화 한 분이 예수라는 말이겠지요.
며칠 전 어느 좌석에서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인간이 감히 천주님이니, 하느님이니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주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현무경을 만들고 일기법으로 천주님의 일을 대신하게 한 것이지, 인간 자신이 천주님이나 하느님이 된다고 가르친다는 건 오만방자한 언사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분은 증산을 유일하신 천주님, 혹은 상제님으로 믿고 있으며, 증산의 현무경을 믿고 일기법을 행한다는 사람들이 함부로 ‘인간이 천주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걸 경계하는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글쎄요. 과연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을지, 아닌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神의 分身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진리를 터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겠죠. 그런 면에서 오늘의 주제는 어제에 이어서 ‘how’ 즉, 진리를 얻기 위한 방편에 대한 걸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
진리는 어떻게 터득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