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선이 부른 ‘얼굴’이란 노래는 나도 가끔씩 흥얼거린다. 맑은 가수의 목소리와 오버랩하여 떠오르는 얼굴은 아련한 그리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금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하여 안 보이는 것을 알아가는 탐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주제로 삼은 것은 대자연에서는 하늘이요, 인체에서는 얼굴이다.
어제의 주제는 <이목구비 중에서 귀와 코는 물로 적시면 안 된다. 반대로 눈과 입은 물이 촉촉하게 적셔주어야 한다. 이건 음양으로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였다.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어제의 글에 충분히 들어 있었으니 코쿤님이 < 귀(耳)와 코(鼻)는 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눈(目)과 입(口)은 양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적당한 음과 양의 조화를 위해서 귀와 코는 물이 닿으면 안 되지만, 눈과 입에는 물을 촉촉하게 적셔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고 한 건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음에 해당한다고 한 귀와 코는 수직으로 서 있고, 양에 해당한다고 하는 눈과 입은 수평으로 벌어져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닌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은 꼿꼿하여 잘 움직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니 이를 음이라고 한 것이고, 수평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항상 조절을 하는 느낌이 들게 마련인데, 그러려면 부단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양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형상으로만 본다면 눈과 입에 비해서 귀와 코가 더 튀어나오지 않았는가? 그러니 당연히 코와 귀를 양이라고 해야 하며, 눈과 입을 음이라고 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그러나, 기능면으로 본다면 눈과 입은 수시로 움직여 변화를 하니 양이라고 해야 하며, 귀와 코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음이라고 해야 한다. 겨울에 날씨가 추우면 눈과 입에 비해서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추위를 타는 것을 보면 어느 것이 양이고, 어느 것이 음이라고 해야 할까? 추위를 타는 것은 그만큼 음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귀와 코는 본질이 음이라는 말이 된다.
이처럼 얼굴의 이목구비에는 형상으로 보는 것과, 본질적, 기능적인 면에서 서로 음양이 엇갈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때는 눈을 양이라고 하는가 하면, 음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코를 양이라고 하는가 하면 음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 등,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음양에 눈을 뜨지 못한 것이지, 결코 음양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나 몸의 이치를 8괘와 비교하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그 복잡한 주역의 64괘도 정복할 날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
신생아의 살결은 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음이라고 해야 할까? 나무껍질처럼 꺼끌한 노인네의 피부는 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음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