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명문대 출신 엄마, 아들 진학 상담 갔다 '경악'

영부, 精山 2012. 11. 28. 10:27

명문대 출신 엄마, 아들 진학 상담갔다 `경악`
[매경포럼] 응답하라! 박근혜·문재인
기사입력 2012.11.27 15:49:20 | 최종수정 2012.11.28 08:57:20 싸이월드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 일이라면 목숨 걸고 덤비지만 내 일이 아니면 아무 관심도 없다. 세상 모든 일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아이들 교육문제는 더욱 그렇다.

이진희 씨(가명ㆍ47)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20여 년간 세무사로 일했다. 컴퓨터를 밥 먹듯 다룰 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도 능통하다. 머리 좋고 야무지기로 소문난 그녀가 최근 뜻밖의 좌절감을 토로했다. 둘째 아들의 대학 입시 때문이었다. "둘째가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해보겠다고 해서 일주일 동안 휴가 내고 매달렸어요. 대학 입시가 복잡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컴퓨터랑 살다시피 하는 저 같은 사람도 대학별 입시요강 찾아서 우리 애한테 필요한 거 갖춰내는 데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있는 사람들은 몇백만 원씩 주고 전문가한테 맡긴다고 하고 그중에 진짜 프로들은 일찌감치 인맥ㆍ학맥 동원해서 줄을 대놓지 않으면 얼굴도 못 본대요. 제가 장담컨대 부모가 좀 덜 배웠거나 돈이 없거나 그런 집 애들은 자기 힘으로는 대학 못 가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처럼 못사는 사람, 못 배운 사람, 서민을 위한다는 DJ정부-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입제도는 더 복잡다단하게,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유리하게끔 변질돼 왔다. MB정부 5년간 교육개혁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교육ㆍ학원 산업 전체에 팽배한 기득권은 날로 번성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 빈곤층 82만4000가구는 대부분 고졸 부모 가구이고, 서비스ㆍ판매ㆍ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부모들이다. 유치원과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비를 지출하느라 30대부터 교육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중ㆍ고생 자녀를 둔 40대는 소득의 56%를 교육비로 지출한다. 그런데 아무리 쥐어짜서 지출해봐야 더 많이 지출하는 계층, 더 빨리 지출하는 계층한테 항상 뒤진다.

제도를 바꿀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은 현재의 대입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왜 학부모들이 아우성을 치는지 잘 모른다. 자신의 자녀들은 중ㆍ고등학교 때 이미 해외로 유학하거나 몇 년간의 해외 생활을 활용해 외국인학교ㆍ외고 등으로 상대적으로 손쉽게 진학하는 탓이다. 국민 대다수와는 완전히 다른 그들만의 `우회로`가 있는 셈이다. 변호사ㆍ판사의 자녀는 로스쿨, 의사ㆍ병원장 자녀는 의학전문대학원, 심지어 삼성 임원의 자녀는 삼성 입사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산점을 받는다.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대학과 직장이 정해지니 조선시대와 다를 게 없다.

현 대입제도는 불공정하다. 못사는 사람, 먹고살기 바쁜 사람, 저학력 계층에 가장 불리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노력과 성과가 아니라 부모의 돈과 시간과 인맥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돼 있는 구조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누리는 게 아니라 신분과 샛길과 요행이 판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한국의 근본적 경쟁력이었던 수평적ㆍ수직적 계층 이동의 가능성과 의욕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다는 점에서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사회는 이미 쇠락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기회의 균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치인 교육의 공평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모두 교육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박 후보는 모든 질곡의 근원인 대입제도 개선안은 내놓지 않았다. 문 후보는 여전히 시험과 경쟁ㆍ수월성 교육을 죄악시한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준다. 출구 없는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학부모들은 제대로 된 교육 공약만 내놓으면 그것 하나만으로 찍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두 후보의 교육 공약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학부모들의 분노를 직감하고 일부러 정곡은 쏙 빼고 맹탕으로 내놓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두 후보는 대입제도 하나만 놓고 제대로 맞짱토론을 벌여볼 일이다.

[채경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