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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형태로 본 현무경 - 1

영부, 精山 2012. 12. 16. 09:08

2. 형태로 본 현무경

 

모양으로 본 현무경

 

현무경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개벽의 결정이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이걸 달리 말한다면 ‘천지공사의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벽주는 말 그대로 ‘개벽을 단행하기 위한 임무’를 띠고 오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화천(化天) 했다는 것은, 곧 개벽을 이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개벽이라고 하면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심지어 증산을 상제라고 숭봉(崇奉)하는 단체와 무리들마저 지축이 바로 잡혀야 개벽이 이뤄지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개벽과 천지공사의 결정판인 현무경에는 그런 말들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무경은 지축이 바로 잡힌다는 등, 물질적인 개벽을 가리킨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수를 통한 깨달음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벽에는 전체적인 면과 개인적인 면으로 구분하게 마련입니다. 전체적인 면은 우주의 시간대를 가리키는 것이요, 개인적인 면은 각자의 사정에 바탕을 두게 마련이겠죠. 우주의 시간대라면 앞에서 말한 천하 대순의 시기와 동학의 창도,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과 같은 전 세계적인 면에서 벌어지는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인 개벽과 정신적인 개벽으로도 구분합니다. 사실은 이런 것들은 동시에 이뤄지지만, 물질이라는 형상을 뒤집어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시공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각자 따로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면, 부산에서 서울로 가려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육체가 그대로 동시에 따라주지 못하고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실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무형인 마음과 유형인 육체나 물질은 사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비록 무형이라고 하지만, 그걸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실 우주에는 무형과 유형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오히려 알고 보면 유형적인 것보다 무형적인 것들이 더 많은 부피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와 같은 거대한 물질이나 그보다 엄청나게 더 큰 별들이 무수하게 많이 있지만,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공간이 더 크지 않나요? 공간은 무형이니, 당연히 유형보다 무형이 더 크고 넓습니다.

 

허공과 물질은 항상 동시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물질의 개벽이나 정신의 개벽은 동시에 이뤄집니다. 다만 그걸 양면으로 다 보지 못하고, 유형적인 면에서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어서 너무 커도 안 보이고, 너무 작아도 안 보입니다. 너무 큰 소리도 안 들리고, 너무 작은 소리도 안 들립니다. 그래서 현미경이나 망원경에 의존하는 게 인간의 오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오감으로 감지(感知)할 수 없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닙니다. 마음을 감지할 수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주만물의 실상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와 우주의 실상이라고 합니다. 현무경은 이런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깨달음을 알려줍니다. 그걸 가리켜 간략하게 ‘개벽(開闢)’이라고 한 것입니다.

 

현무경에는 기록이 없으나 다른 경전에서 개벽주의 말씀을 빌리자면 ‘묵은 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다’고 하시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뜯어고쳐 물 샐 틈 없는 도수를 짜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물 샐 틈 없는 도수’에 대한 내용이 현무경의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현무경은 바로 그런 도수로 채워져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느 일이건 성사되는 과정을 보면 반드시 시공이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그걸 이루기 위한 계획과 정성, 노력도 있어야 하며 물질적인 재료도 있어야 합니다. 시공은 天이 지어 놓으며, 물질은 地가 내어놓고, 계획과 정성, 노력은 人의 몫입니다. 아무리 천지가 시공을 짓고 물질을 준다고 하여도 인간이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인간이 혼신(渾身)의 노력과 정성을 들인다고 하여도 시공의 법칙을 제대로 모른다면 이 또한 허사(虛事)로 돌아가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천지인 3신은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부경과 지부경의 가르침이었으며, 그걸 더욱 구체화 시킨 것이 바로 현무경입니다.

 

예부터 天의 역할을 가리켜 天文이라 하고, 地의 역할을 가리켜 地理라 하며, 人의 몫을 가리켜 人事라고 하였습니다. 上通天文, 下達地理, 中察人事(혹은 中通仁義)라고 하는 격언은 이를 가리킵니다. 현무경은 바로 이와 같은 이치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天文은 하늘의 소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월성신의 순환과 변화를 통한 우주변화의 원리를 말합니다. 예부터 우리민족은 하늘을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그 이유는 천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일월성신의 순환과 변화를 학문으로 집대성하여 후손에게 전해주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역학(易學)입니다. 그러므로 天文은 결국 易學을 의미합니다.

 

地理는 천문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지리라 함은 땅에서 벌어지는 온갖 변화의 원리와 이치를 가리킨 것인데,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입니다. 다만 땅에서는 유형적인 물질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물질도 제멋대로 생긴 게 아니라, 하늘에서 보여주는 일정한 법칙에 의거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늘이나 땅이나 다 같이 무형의 이치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왜 하늘은 天文이라 하고, 땅은 地理라고 할까요? 文과 理를 합하면 文理가 되는군요. 文理가 터지면 모든 사물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이 이른다고 합니다.

 

하늘의 원리를 文이라고 한 데에는 3대 상서가 모두 무늬로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늬는 본래 文이라고 합니다. 文은 ‘글월 문’이라는 뜻 외에도 ‘무늬, 얼룩, 채색’ 등의 뜻이 있습니다. 상서가 모두 무늬로 된 이유는, 모든 만물은 순양과 순음인 건곤(乾坤)의 기운으로 얼룩무늬로 화한 것임을 일러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상만물을 가리켜 색계(色界)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이치에 의해서 天文이라는 용어가 나왔다면, 地理라는 용어는 어디에 근거할까요? 文이라는 글자가 물에서 얼룩무늬가 나와서 이리 저리 놓인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라고 하는데, 亠(돼지해밑 두)와 乂(벨 예, 다스릴 예, 혹은 다섯 오)가 합한 모양입니다.

 

 돼지는 6亥라고 하는데, 물질을 만들어내는 水라고 합니다. 즉, 天一生水에서 나온 6水가 만들어 놓는 얼룩무늬(물질)이 얽히고설킨(乂) 상태를 文이라는 글자로 썼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理(다스릴 리, 순행할 리)는 王이 사는 里(마을, 거리)를 가리키는데, 王은 천지인 삼신을 하나로 일관한 존재입니다. 里는 土위에 田이 있으니, 이것은 대지와 밭이 있어야 마을을 이룬다고 본 데서 나온 글자입니다. 따라서 理는 3신을 일관한 왕이 국가나 마을을 다스리는 법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존재하는 무형으로 있던 3신이 물질을 매체로 하여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곳이 땅이라는 걸 감안하면 文은 반드시 理로 드러나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天文과 地理라는 용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人事의 事(일 사, 전념할 사, 정치 사, 섬길 사)는 十과 口와 又가 합한 문자인데, 十은 나무나 깃대를 가리키고, 口는 깃발을 가리키며, 又는 손을 가리키므로, 손으로 깃발을 높게 들고 있는 것이 큰일이라는 데서 ‘일 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즉, 人事는 文과 理를 人이 깨쳐서 높게 드날리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人事는 천문과 지리를 통하지 않으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